김해용기자 현지르포…일본인들의 야욕에 전율
독도와 가장 가까운 일본의 영토는 오키(隱岐) 섬이다. 행정구역 상 오키섬은 독도의 영유권 억지 주장의 본산(本山)인 일본 시마네(島根)현에 속해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은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고 제멋대로 이름붙이고 오키섬의 부속섬으로 고시했다. 오키섬은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의 전초기지인 셈.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의결한 직후인 17.18일 오키섬을 현지 취재했다.
# 대형 입간판 '돌아와라! 다케시마'
시마네현의 주도(主都)인 마쓰에(松江)시로부터 70km 떨어진 오키섬 . 40인승 프로펠러 여객기를 타고 오키섬으로 날아가는 내내 궂은 비가 흩뿌렸다. 이즈모 공항을 출발, 30분이 지나 오키공항에 내려 기자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사이고(西鄕)항구.
'다케시마! 돌아와라. 섬과 바다'라고 적인 대형 입간판부터 눈에 들어온다. 오키섬 마을회가 만든 이 입간판 옆 쪽 선착장 건물에도 '돌아와라! 다케시마'라는 문구와 독도의 위치가 그려진 대형 광고판이 있었다. 독도에 대한 일본인들의 야욕과 집착이 얼마나 뿌리 깊은 지 눈으로 확인하는 것 같아 몸이 떨렸다.
사이고항에 도착하자 마자 오키 향토관을 찾았다. 독도와 관련된 사료가 별도 코너에 전시돼 있다는 사전 정보가 있던 터였다. 차로 30분 거리를 달려 찾아갔지만 정작 그런 코너는 없었다. 연유를 들어보니 19일 시마네현 마쓰에시에서 열리는 '다케시마 시마네현 고시 100주년 기념 행사'에 대여해 줬다는 것이다.
대신 여직원은 독도 관련 자료 등을 보여준다. 허술하게 보관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는 높아 보이지 않았지만, 독도 주변 해역에서 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오키섬 어민들의 허가 신청서와 1968년 일본 산인(山陰) 방송국이 항공 촬영으로 찍은 독도 사진, 1900년대 초반 일본 민간인과 관료들이 독도에 상륙해 찍은 기념 사진 등을 볼 수 있다.
#가까와서 자기네 땅이라고?
오키섬은 크게 도고(島後)와 도젠(島前) 두 개의 큰 섬으로 나뉘어 있다. 사이고항이 있는 곳은 도고 지역이다. 도젠 지역에 가면 독도까지 거리를 표시해 놓은 전망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고속정을 타고 50분을 달렸다. 도젠은 사람도 잘 보이지 않는 한적한 섬이었다. 택시를 타고 30분을 달려 구니카(國賀) 해안에 있는 야카오(赤尾)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 안에 방위표시와 함께 여기서 독도까지 160km라는 표시가 돼 있었다.
동해바다를 바라 보았으나 눈 씻고 보아도 섬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동행한 택시기사 도미야 히데유키씨는 "아무리 맑은 날이라도 다케시마는 거기서 안보인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도미야씨는 "오키섬과 가깝기 때문에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폈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거리는 92km. 날씨가 맑은 날 울릉도 성인봉 정상에서는 독도를 맨 눈으로 볼 수 있음을 알고나 그런 소리를 할까.
사이고항에 돌아와 어민들과 인터뷰를 시도했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자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며 "바쁘다"고 자리를 피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어부는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 내가 어릴 때 아버지가 다케시마 주변 바다에서 고기를 잡았다. 요즘은 한국 경비선이 다니기 때문에 오키섬 어민들은 다케시마 근처 바다에 갈 생각을 못한다"라고 말했다.
사이고항 거리에서 만난 전직 공무원 쓰미 미쯔요시(60)씨는 "옛날부터 일본 어부들이 많이 갔기 때문에 다케시마를 일본 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외에 다케시마가 왜 일본땅인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복원시켜야 할 안용복의 흔적들
오키섬은 우리 역사상 유례가 드문 '민간 외교가' 안용복(安龍福)의 발자취를 담은 곳이기도 하다.
숙종 19년(1693년) 조선의 평민 안용복은 울릉도에 출몰하는 왜인들을 제지하기 위해 울릉도에 갔다가 일본 어부에 의해 오키섬에 끌려갔다. 오키섬에서 안용복은 당시 오키섬의 책임자인 다이칸(代官.도주)과 담판을 벌여 독도가 엄연한 조선 땅임을 과시했다. 안용복은 돗토리성에 신병이 인도된 뒤에도 돗토리 성주에게 독도를 넘보지 말라고 맞서, 결국 에도(江戶)막부로부터 '일본인은 울릉도와 독도에 가지 말라'는 결정문을 받아 귀국한다.
그러나 조선 조정은 그를 옥살이시키고 유배시켜 버렸다. 오키섬은 역사에 묻힌 안용복을 복원해야 할 당위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일본 시마네현 오키섬에서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사진설명 : 취재진을 안내한 택시기사가 오키섬 전망대에서 독도방면을 가리키고 있다. 이상철기자 find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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