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특별기고-일본 체계적 연구 전기로 삼자

입력 2005-03-16 11:53:00

일본 시마네현(島根縣) 의회가 '다케시마(竹島: 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을 제정하는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얼마 전에는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대사가 서울 주재 외신 기자들에게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다케시마는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 일본의 속내를 드러냈다.

일본 사람들은 좀처럼 자기들의 속 마음인 '혼내'(本音)를 드러내지 않는다. 주한 일본대사가, 그것도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이런 말을 했으니 일본이 무엇인가 단단히 작심을 한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또 반일 분위기를 전하러 간 한국 측 한'일 의원 연맹의 간부들에게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수상은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대응책을 밝히는 데 그쳤다. 하기야 중앙 정부는 지방 자치단체의 행동에 제약을 가할 수 없다는 그들의 주장도, 우리의 처지에서 보면 때리는 신랑보다 말리는 시어머니가 더 미운 형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 같은 사실은 시마네현의 지사가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시마네현 고시로 독도를 자기네 영토에 편입시킬 때도 그랬기 때문이다. 그때도 독도에 다케시마라는 이름을 붙여 일본 소속으로 한다는 각의(閣議)의 결정을 한 다음, 시마네현에 고시의 공표를 지시했었다.

따라서 이번에도 중앙 정부의 내밀한 지원과 사주가 없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 정부는 미적미적 그 대응을 미루어 왔다. 그 사이에 일본은 정해 놓은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시켰다.

여기에서 일본의 주장을 처음부터 재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흥분하지 말고 그들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정말로 정당성을 가지는 것일까 하는 문제를 냉정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사료로 볼 때 그들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이 조선 침략을 위해 해군 수로부(水路部)에서 1893년에 '조선수로지(朝鮮水路誌)'를 만들 때까지만 해도 독도를 프랑스 선(船)에 의해 붙여진 '리안코루토 열암(Liancourt rocks)'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의 영토로 보았다. 그러다가 조직적으로 독도를 탈취한 뒤에 만들어진 1910년의 '일본수로지' 제4권에서는 다케시마라고 해 자기들 영토에 넣었던 것이다.

일본의 역사학자들 가운데도 이렇게 이루어진 독도의 일본 영토 편입은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을 한 사람들도 있다. 야마베 겐타로(山邊健太郞)나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 같은 역사학자들은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정한 바 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왜 간헐적으로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는가? 실제로 일본이 자기네 영토로 고시를 하고 난 뒤에도,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표기한 일본의 자료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어물쩡한 태도를 취하던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우기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한국 정부는 독도를 우리 영토로 인정하고, 국내법에 의해 3해리의 영해와 12해리의 전관 수역을 설정하였다. 그러다가 1999년 '신 한'일 어업 협정' 체결때 독도 인근 해역을 배타적 경제 수역(Exclusive Economic Zone)에 넣는 데 한국이 동의함으로써, 이 일대는 항해 및 그 상공 비행에 공해와 마찬가지로 제3국의 자유가 인정되는 수역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처럼 치밀한 준비와 계산을 가지고 한국에 대한 정책을 펴왔는데도, 우리는 기분과 감정만으로 대응해 왔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표현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을 연구하는 국책 기관 하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연구 기관을 하나쯤 만들어 장기적인 안목에서 일본을 연구하고 그 대응책을 마련하여야 하지 않을까. 성명서를 발표하고 피켓을 들고 반일 데모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을 정확하게 아는 길일 것이다. 이번 기회에 일본 연구기관이나 독도연구기관을 만들어 체계적이고도 이성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김화경 영남대 문과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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