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바이브레이터'는 약간은 야하지만, 은유하는 것이 많은 섬세한 영화다. 제목처럼 질펀하지 않고 은근한 감정의 떨림을 유도한다.
거식증과 불면증, 환청에 알코올 중독까지…주인공인 여류 작가 레이(데라지마 시노부)가 안고 있는 병이다. 와인에 대한 글을 쓰는 그녀는 24시간 편의점에 와인을 사러 갔다가 그 남자를 만난다. 컨테이너 트럭 운전사 다카토시(오모리 나오). 노랗게 물든 머리, 그가 지나며 뿜는 냄새에서 제어할 수 없는 어떤 강인함을 느낀다.
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 남자를 따라간다. 그리고 차에 올라 충동적으로 섹스를 나눈다. 컨테이너 트럭은 도쿄에서 니가타로 길을 떠나고, 레이는 섹스와 대화를 나누면서 다카토시와 점점 가까워진다. 트럭이 처음으로 다시 되돌아왔을 때, 그녀는 그토록 고통스럽던 강박증세가 사라졌음을 느낀다.
'바이브레이터'는 로드 무비다. 길을 따라 주인공의 감정도 변하고, 또 성장한다는 전통적인 형식을 띠고 있다. 레이를 괴롭히는 병은 현대병이다. 가치관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 세대들의 병이다. 와인처럼 고급스럽고 부유하지만, 정신은 황폐하고 흔들리고 소통하지 못하는 일본 현대인의 초상이다.
레이는 글을 쓰는 화이트칼라이고, 트럭운전사 다카토시는 블루칼라다. 그동안 우선되던 화이트칼라가 천시 받던 노동계급을 통해 강박관념을 치유 받는다. 정신적 공황을 육체적 강인함이 메우는 것이다.
왜 컨테이너일까. 일본은 자신의 왜소함을 거대한 외형으로 보상받는 경향이 있다. '고질라', '에반게리온' 등이 그렇다. 거대한 로봇을 움직이는 것은 작은 인간이다. 마치 뇌의 일부처럼 로봇을 조종한다. '바이브레이터'의 다카토시는 바로 그런 인물이다. 원시적이며, 근육질이며 모든 것은 수용한다.
그 소통점이며, 융합과 화해의 매개체는 섹스다. 레이는 차에 오르면서 섹스에 대한 욕구로 얼굴이 발갛게 변한다. 그리고 "만지고 싶다"고 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섹스가 충동적으로 치러진다.
자위는 고독과 소외, 그리고 욕구가 혼재된 복잡한 행위이다. 바이브레이터는 그 욕구를 유린하는 야수와 같은 존재다. 레이는 자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삶에 등을 돌리고 있다. 그녀가 하는 것이라고는 먹고 토하는 일이다. 물에 불어터진 군용건빵처럼 맛대가리 없는 시간을 건져 먹으며 권태라는 우리 속에서 사육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바이브레이터다. 혼자서 즐기는 자위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섹스이며, 타인과의 소통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레이의 자위도구는 나오지 않는다. 포르노의 단골소품 바이브레이터. 그러나 그녀의 고통을 달래는 거대한 바이브레이터가 나온다.
바로 다카토시의 트럭이다. 그는 트럭의 시동을 끄지 않는다. 늘 '그러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진동한다. 그 떨림 속에 레이는 섹스의 엑스터시 뿐 아니라 삶의 희열까지 느낀다. 그녀에겐 그 어떤 바이브레이터보다 의미 있는 바이브레이터인 것이다.
아카사카 마리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바이브레이터'는 핑크무비(일본 에로무비) 출신 감독의 작품이다. 1982년 핑크무비 '성학대! 그 여자를 폭로한다'로 데뷔한 히로키 류이치 감독이다.
감각적인 영상과 스토리가 간결하면서도 힘이 넘친다. 삶과 사랑에 대한 솔직한 표현도 좋다. 특히 여주인공 레이 역의 테라지마 시노부의 연기가 일품이다. 그녀는 정말 바이브레이터가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목말라 뒤트는 몸짓과 흔들리는 눈빛이 갈구의 떨림을 그대로 전해준다.
(에로영화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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