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사 여행은 매표소 지나 오른쪽으로 길게 펼쳐진 솔숲에서부터 시작된다. 속계에서 선계로 이어지는 들목이기 때문이다. 짧게는 수령 100년 안팎부터 길게는 200~300년의 소나무가 빽빽하게 자라 있다.
눈보다 마음이 먼저 열린다. 기둥은 물론 솔가지 하나 반듯하게 펴진 것이 없을 정도로 이리저리 휘어진 소나무는 모두 서쪽을 향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운문사는 일주문이 따로 없기 때문에 솔숲 터널이 일주문을 대신한다.
솔숲 길을 지나면 바로 운문사다. 신라 시대 때 건립된 운문사는 1천500년 역사를 가진 대가람. 지리산 실상사와 마찬가지로 평지에 지어진 사찰이다. 그래서 그런지 경건함보다는 편안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가람을 두르고 있는 산이 높고 산뿌리는 넓다. 동쪽으로는 운문산과 가지산이 어깨를 맞대고 있고, 서쪽으로는 비슬산, 남쪽으로는 화악산, 북쪽으로는 삼성산이 운문사를 감싸고 있다.
새대웅보전이 건립되기 전까지 오랜 세월동안 대웅전이었던 비로전이 보인다.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정면, 측면이 각각 3칸인 팔작지붕집이며 꽃살로 조각된 문이 특히 아름답다. 비로전 앞에는 3층석탑 한 쌍이 서 있다. 그리고 석조여래좌상과 사천왕상이 있으며 원응국사비, 석등 등의 보물이 있다.
국내 최대의 비구니 도량답게 흐트러짐 없이 정갈하기만 한 매무새, 그리고 홍조가 내린 하얀 얼굴에 햇빛이 들기 시작하면 경내는 고혹적인 모습으로 다시 피어난다. 오전 10시 40분쯤, 홍가사를 차려입은 비구니들이 대웅전으로 모여든다. 사시예불을 올리기 위해서다. 대웅전 문지방 너머 나지막이 들려오는 비구니들의 예불소리가 들린다.
부처님께 귀의하고 변치 않는 진리에 귀의하며, 또 그것을 받들어 행하는 스님들에게 귀의한다. '청춘을 내던지고 지극한 마음으로 당신의 뜻에 따르겠다'고 다짐한다.
부처 앞에 엎드려 세속의 모든 번뇌를 씻어달라고, 몸도 마음도 내 것이 아닌 당신 것으로 가져다 달라는 비구니들의 순명과 귀의는 너무 단호해 서럽고, 너무 소박해 아름답다. 곳곳에 흐트러짐 하나 없는 단아함이 배어 있다. 예불을 올리는 대웅보전 앞 댓돌에 놓인 비구니들의 털신이 이채롭다.
낭랑한 비구니들의 예불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속세에 물든 마음까지 경건해진다. 여기에 계곡물 소리와 새소리가 더해져 산자락을 타고 흐르면 세상 번민은 스멀스멀 사라진다.
절 옆 극락교 밑 계곡에선 물소리가 세차다. 속세에 물든 마음까지 씻어줄 정도로 맑다. 목탁소리와 비구니의 예불소리, 그리고 물소리가 멋진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새소리까지 더해지니 경내는 봄의 왈츠가 은은히 울리는 것과 같다.
운문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천연기념물 180호 '처진 소나무'이다. 높이 6m, 가슴 높이의 주위 둘레가 2.9m에 달하는 거대한 소나무는 모든 가지가 땅을 향해 휘어져 있다. 수령 400년이 넘는 이 소나무는 가지를 모두 땅에 내려놓고 있는데 상한 솔잎 하나 찾기 힘들다. 절에서는 해마다 봄.가을에 막걸리 10여말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올해도 지난 3일에 막걸리를 보시했다.
운문사 일대에도 봄이 왔다. 운문사 앞 신원리(삼계리)일대에서 18일부터 20일까지 '제2회 운문산 고로쇠축제'가 열린다.
◇딸린 사찰
운문사에 딸린 암자로 가는 숲길은 깊고 그윽하다. 고즈넉한 사색의 길이다. 봄새가 구성지게 울어댄다. 나무둥치를 쪼는 딱따구리 소리도 듣기 좋다. 고목을 피해 이리저리 휘어진 오솔길을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들이마시는 공기가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느릿하게 땅을 촉감을 느끼며 걷는다면 서서히 나무에 물이 오르는 숲의 기운이 이슬처럼 가슴에 내려앉는다.
가장 좋은 숲길은 청신암에서 내원암으로 이어지는 길. 걸어서 30분 거리의 이 길에는 수령 수백년의 고목들이 우거져 있다. 운문사 들머리의 솔숲과는 달리 전나무와 소나무, 참나무가 어우러진 자연림이다. 그 사이로 오솔길이 놓여 있다. 기둥부터 가지까지 휘어짐 없이 직선으로 뻗은 전나무와 구불구불한 소나무가 대조를 이룬다.
내원암 무량수전을 등지고 앞산을 바라보니 가지에서 불그스름한 빛이 감돌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절 한 켠 양지바른 곳에서는 졸린 눈을 비비며 고양이가 긴 하품을 하고 있다.
청신암에서도 봄이 느껴진다. 요사채 툇마루가 그렇다. 엉덩이가 따뜻해지면서 일어나기 싫어진다.
북대암에 오르면 운문사의 산세를 볼 수 있다. 오르는 길은 시멘트 포장길이어서 운치가 다소 떨어지지만 암자에서 내려다본 운문사 풍광은 수려하다.
사리암은 북대암과 함께 운문사에서 가장 효험있는 기도도량. 석가 열반 후 미륵불이 출현하기 전까지 중생을 구제한다는 나반존자상을 모신 암자다. 돌계단을 40여분 올라야 하지만 기도를 하기 위해 찾는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가는 길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소개하는 길로 가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대구-영남대 오거리(월드컵대로로 가면 우회해야 한다)에서 우회전-청도.남산-청도,자인-자인네거리에서 청도.남산쪽으로 우회전--청도.금천- 동곡네거리에서 금천쪽으로 좌회전-동곡삼거리에서 운문사로 가면된다. 5분 정도 가면 운문호가 보인다. 드라이브길이다. 호숫가를 따라 호반길이 놓여있다. 구불구불한 호반길을 돌다보면 호수의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다.
사진=박순국편집위원 toky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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