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4개교 연합 '일진회' 적발

입력 2005-03-15 07:04:24

'아지트'서 합숙훈련…대장 이모군 등 10명 영장

소문으로 떠돌던 대구지역 일진회의 베일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학교마다 '짱'으로 통하는 이들은 4, 5개 학교가 연합한 일진회를 구성했고, 회원 집을 '아지트' 삼아 합숙훈련까지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대구 동구 모 고등학교에 대구지역 전체 일진회 '짱'이 있으며, 대구지역 중학교에만 10여개에 이르는 연합 일진회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대구 중부경찰서는 15일 교내 폭력조직인 '일진회'를 결성해 폭력을 행사하면서 학생들을 상대로 금품을 뜯거나 돈을 훔치도록 협박한 혐의로 ㅂ중학교 일진회 대장 이모(15·북구 복현동)군과 ㄱ중학교 행동대장 김모(14·북구 복현동)군 등 10명을 붙잡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군 등은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7시쯤 북구 산격동 대구체육관 앞에서 ㄱ중학교 이모(13)군의 뺨을 때리는 등 폭력을 휘두르면서 "돈을 훔쳐와라,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라고 협박했다. 이에 겁 먹은 이군이 인근 십자수 가게에서 현금 1만3천 원을 훔치게 하는 등 지난 2월 말까지 박모(12·북구 복현동)군 등 2명으로부터 9차례에 걸쳐 60여만 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 박군의 경우, 이들 일진회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석달 전쯤 가출했으며, 이후 찜질방 등을 전전하며 생활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박군이 머물고 있던 달서구 용산동의 한 찜질방 주인이 '일진회' 관련 언론 보도를 접한 뒤 경찰에 신고하면서 밝혀졌다. 이 주인은 평소 찜질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겁에 질린 듯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박군에게 "왜 집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고, 주저하던 박군이 일진회 협박에 못이겨 저지른 일들을 고백했다.

박군은 일진회의 상습 폭행과 협박을 피해 지난해 12월 ㅂ중학교에 자퇴서를 냈고, 집 주위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그들을 피해 찜질방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들의 감시 속에서 PC방, 슈퍼마켓 등지에서 돈을 훔쳐 상납했다고 털어놨다. 15일 오전 현재 박군은 일진회의 보복을 두려워해 잠적한 상태다.

경찰조사 결과 ㅂ중학교, ㄷ중학교, ㄱ중학교 등 4개 연합파인 이들은 지난 1월 말부터 6, 7일간 일진회 행동대원인 ㅂ중학교 최모(15·북구 복현동)군의 집에 모여 합숙훈련을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한번 돈을 뜯어낸 학생에게는 감시원을 붙여 피해신고를 못하도록 했다. 2명이 한개 조로 등교부터 하교까지, 심지어 집 근처까지 따라가 감시했다는 것.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선배들이 각 중학교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학생을 일진회 대장으로 지목했으며, 이들 대장이 학교와 인터넷에서 모여 인근 중학교 간 연합파를 구성했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대장을 '장군'이라고 부르며, 학교당 5~10명의 일진이 있다고 밝혔다.

학교 간 연합파는 다른 지역 폭력조직이 싸움을 걸어올 경우에 대비해 1차적으로 뭉치기 위해 결성됐다. 또 학교별 대장들과 회원들은 인터넷 채팅사이트에 커뮤니티를 만들어 '일일호프'나 '일일찻집' 등의 행사를 기획하고 행사비는 학생들로부터 갈취했다. '장군'인 대장이 행동대장에게 명령을 내리면, 회원들이 비회원으로부터 돈을 상납받고 위쪽으로 건네졌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휴대전화카메라로 찍은 이들의 흡연 장면 등이 실려 있다. 10여개 연합 일진회의 목표는 '대구지역을 통일하자'는 것이며, 일진회가 아닌 다른 조직이 싸움을 걸어올 경우 공동 대응한다는 원칙도 세워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일진회는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볼 수 있는 조직폭력배의 행태를 그대로 모방해 조직망을 갖추었으며, 대장은 학교 선배가 지정하고 매년 신학기에 교체되는 것을 관례화하고 있다"며 "피해자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여죄를 찾고 있지만 워낙 점조직화돼 있어 혐의 확보가 어렵다"고 말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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