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소나무

입력 2005-03-12 13:07:12

겨울 혹한 속의 초라한 집 한 채. 그 집을 양쪽에서 보듬고 선 소나무와 잣나무.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에 담긴 풍경이다. 추사가 59세때인 1844년 제주도에 귀양갔을 때 스승을 잊지 않고 두 번씩이나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준 제자 이상적(李尙迪)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그려준 작품이라 한다.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송백이 늦게 시듦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라는 논어 구절처럼 귀양살이 신세인 자신에게 변함없는 존경심을 보여준 제자를 한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한 것이다.

◇ 예로부터 우리민족에게 소나무는 지조와 절개, 의리, 꼿꼿한 선비정신의 상징이다. 작년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소나무'(43.8%)가 첫손가락에 뽑힌 것도 당연하다. 사시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는 고절(高節)한 그 모습이 숱한 시련을 꿋꿋이 이겨낸 한민족의 기상과 기막히게도 잘 어울린다.

◇ 소나무는 생활 속의 멋이기도 하다. 소나무를 스치는 바람소리는 송성(松聲), 달빛 아래 소나무의 은은한 그림자는 송영(松影), 소나무가 보이는 창 또는 솔그림자가 비치는 창문을 송창(松窓), 소나무가 서있는 절벽은 송애(松涯), 울창한 솔숲 계곡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은 송계(松溪) 등으로 불렸다.

◇ 조선시대 궁궐을 지을 때도 소나무 목재만을 썼을 만큼 이 땅 나무들 중 우두머리 나무인 소나무가 솔수염하늘소가 옮기는 일명 '소나무 에이즈' 때문에 지금 고사 직전에 처해지게 됐다. 1905년 일본에서 발병된 재선충병은 일본의 소나무를 초토화시켰다. 지난 88년 부산에서 발생해 현재 맹렬한 기세로 북상일로에 있다. 전문가들은 이 광풍을 지금 잡지 못하면 20년내 국내 모든 소나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한다.

◇ 뒤늦게나마 정부와 각 지자체가 특별대책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각계 저명 인사들도'솔바람 모임'을 만들고 소나무 살리기에 나섰다. 재선충병에 대한 국가 차원 대책을 촉구하는'문화'예술계 100인 긴급동의'를 발표한 데 이어 소나무를 '나라 나무'로 삼기 위해 100만 명 서명을 통한 국회 청원운동도 벌이겠다고 했다. 눈만 들면 볼 수 있는 푸른 소나무를 우리 후손들도 볼 수 있도록 모두가 마음을 모아야 할 때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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