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사람-지역1호 남성 무용수 이화석씨

입력 2005-03-12 11:00:17

남성 안무가. 여성이 대부분인 무용계에서 '청일점'인 그들은 보석과도 같은 소중한 존재이다.

하지만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비정한 운명체이기도 하다.

지역 1호 남성 무용수인 이화석(42)씨도 여성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살아남기 위해 무척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지난 1983년 계명대 무용학과 개설 첫해 유일한 남학생이었던 이씨에게 무용계가 거는 기대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유일한 남자라는 수식어는 제게 많은 부담을 줬어요. 조금만 실수를 해도 금방 눈에 띄었지요." 그러나 혼자이기 때문에 좋은 점도 있었다고 했다.

"어느 콩쿠르에 나가더라도 남자 무용수는 저뿐이었기 때문에 입상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었어요. 하하."

춤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그가 중학생일 때. 음악 리듬에 맞춰 몸 흔들기를 유난히 좋아했던 이씨에게 안무가로서 무한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발레복을 입게 된 것.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을 거쳐 계명발레아카데미 대표를 맡았고, LA발레단과 샌프란시스코발레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등 국내 최정상급 발레리노(남성 발레 무용수) 한 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무대에서 그는 언제나 주역이었고 왕자였다.

프랑스 작곡가 아당의 '지젤'에선 주인공 알브레히트였고,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에선 요정의 왕 오베론이었다.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에선 왕자역을 도맡았다.

그런 그에게도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었다.

인간세계와 다른 몽환적이며 환상적인 세계를 표현해야 하는 발레 무대에서 발레리노는 더 높이 뛰어올라야 하는 등 체력적인 한계로 수명이 짧은 특성 탓이다.

"10대에서 20대 중반까지의 나이가 발레리노로서 제일 좋은 나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나이에 무대 대신 학교에 있어야 하지요. 우리나라에 발레리노가 희귀한 원인이기도 합니다.

"

발레복을 벗은 그는 대신 춤의 폭을 넓히기로 했다.

"체력적인 한계도 이유였지만 그보다 형식미를 강조하는 발레의 움직임만으로는 제 작품을 만드는 데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지요. 그래서 다른 장르로 눈을 돌렸어요." 이후 그는 권명화 선생에게 살풀이를 사사했고 힙합, 재즈 같은 실용무용도 섭렵했다.

이씨는 "무용을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이라는 삼분법으로 계속해서 나눌 경우 더 이상의 발전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씨는 1990년대 중반부터 발레라는 클래식 기반 위에 현대적인 감각의 춤사위들을 가미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요즘 우리 예술계에 불고 있는 '크로스 오버'를 그는 10년 전에 선보인 셈이다.

"무용계에서는 제 작품에 대해 국적 없는 춤이라고 부르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지요. 하지만 클래식은 우아하며 품위 있고, 실용무용 같은 대중 장르는 천박하다는 고정관념이 무용 발전의 족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

그의 머릿속에는 '무용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무용은 지루하다는 생각 때문에 무용 공연에는 매번 보는 사람만 찾아 오지요. 아니, 무용인들만 온다는 게 맞겠죠. 요즘 트렌드에 맞는 신선한 시도와 재미를 부가해야 일반 관객이 늘지 않을까요."

지난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구예술대에 실용무용과를 개설, 강의를 하고 있는 이씨의 목표는 여러 장르의 접목을 통해 점점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지역 무용에 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순수예술의 대중화, 대중예술의 예술적 승화라고 표현한다.

그의 목표대로 무용이 재미있는 공연 장르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