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다솜'…구미 11남매 살아가는 이야기

입력 2005-03-12 10:20:24

"첫째 '빛나'는 애교가 많고, 둘째 '다솜'이는 깔끔하고, 셋째 '다드림'은 책임감 있고, 넷째 '모아'는 명랑하고, 다섯째 '들'은 침착하고, 여섯째 '바른'이는 유쾌하고, 일곱째 '이든'이는 장난기가 많고…."

쭉쭉 뻗은 느티나무·벽오동과 배배 꼬인 등나무가 정답게 맞는 구미시 고아읍 황산리 김석태(47)씨네 집. 김씨와 부인 엄계숙(42)씨는 11남매 아이들 특징까지 하나하나 소개했다.

순서도 틀리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튀어 나온다.

올해 대학에 들어간 맏이 '빛나'(18)부터 지난해 태어난 '나은'(1)이까지 5남6녀. 모두 1986년 결혼한 엄씨가 낳았다.

"처음부터 많이 낳으려고 하진 않았죠. 욕심으로는 쌍둥이 한번만 낳고 그만 낳을 생각이었어요. 첫째를 낳고 나서는 산고로 더 이상 애 낳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순리대로 살겠다"는 부부의 기나긴 출산 여정은 17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계속될 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데 주시는 대로 받아야죠."

방 세 칸 부엌 하나 화장실 하나인 이 집에선 모든 게 나이 순이다.

세수도 엄마가 차례로 깨워서 시킨다.

형이 안 하면 동생은 할 수가 없다.

온 가족이 한꺼번에 식사하는 휴일에는 또래별로 모아 식사를 한다.

식구가 열셋인데 TV 채널 다툼은 없을까. 그런 일은 없다.

TV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이다.

컴퓨터도 고등학생은 하루 30분, 중학생은 20분, 초등학생은 10분씩만 허락한다.

게임은 금지.

그럼 엄마는 애들이 헷갈리지 않을까. 엄씨도 시인(?)했다.

"아홉째 '뜨레'를 낳을 때까지는 누군가가, '얘가 몇 째냐'고 물으면 대답이 어려웠어요. 그래서 가족 송을 만들었지요. 도레미 송에 애들 이름을 넣어 부르니까 이제는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어요."

이 집에는 '돈'이 없어도 행복이 넘친다.

수입은 교회에서 나오는 약간의 보수와 김씨가 가끔 목수로 일해 주고 받는 봉사료가 전부. 그래서 아이들 사교육은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

아이들 성적이 나쁠 것이란 생각은 오산이다.

학원 근처에도 안 간 맏딸 빛나가 올해 경북대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그것도 장학금을 받고.

"우리 집 애들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거의 '까막눈'이에요. 학습지도 없죠. 하지만 입학한 뒤에는 학습흥미가 높아져 수업시간에 몰두해요. 4학년 정도 되면 반에서 중간 정도는 합니다.

" 부모가 강요하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터득하는 셈. 아이들 또한 구김살이 없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문제가 아니다.

집 밖 낙동강에서 엄마 아빠와 뛰놀고 집 뒤 텃밭에서 자연과 함께 자란다.

옷이나 책도 주로 얻어 쓰지만 아이들은 기특하게도 불평 한 번 쏟아내지 않는다.

"동생들이 많아서 부끄러워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제가 시집간 뒤에 동생 더 낳아도 된다고 엄마한테 말해요. 친구들도 모두 부러워하고요. 동생들이 자기 일은 스스로 다 하기 때문에 마음 상하는 일도 잘 없어요." 장녀인 빛나의 이야기다.

잠은 안방에서 모두 모여 잔다.

서로 뒤엉켜 꿈을 꾼다

엄마는 철인(鐵人)이다

새벽 5시 반이면 일어나 가족의 아침을 준비하고 애들을 차례로 학교에 보내고,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을 하루 종일 돌봐야 하고… 취침시간은 평균 새벽 1, 2시. 낮잠도 못 잔다.

젖먹이를 안고 세탁기 돌아가는 사이 잠깐씩 조는 게 전부다.

엄씨는 3천80일을 임신한 상태로 보냈다.

배가 부르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정도. 그런 엄씨지만 입덧이 심해 고생을 많이 했다.

"차라리 애 낳는 게 더 쉬워요. 하루만 고생하면 되잖아요. 하지만 입덧은 몇 달씩 이어지잖아요."

고향이 서울과 경기도 이천인 김씨 부부가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은 1988년 11월. 인연이라고는 김씨의 형수 고향이 이곳이고 10년 넘게 비워져 있던 낡은 교회가 있었다는 것뿐.

"저희를 보고 셋째 낳겠다고 결심했다는 분들이 많아요. 결손 가정에서 자라 항상 가족의 품을 그리워한다는 교도소 재소자들의 격려전화도 꽤 걸려오고요. 그런 분들에게 희망이 됐다면 좋은 일 아닌가요."이상헌기자 dava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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