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새 영화 4편

입력 2005-03-09 08:50:03

짜릿하게…통쾌하게…'봄'에는 '봄'

낮 최고기온이 15℃를 넘어서면서 완연한 봄 기운으로 남녘엔 이미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활짝 펴고 새 영화로 봄을 맞는 것도 좋을 듯하다.

11일, 18일 잇따라 개봉하는 짜릿한 스릴러 영화 '맨츄리안 켄디데이트' '스파이더'와 통쾌한 액션 영화 '잠복근무' '호스티지' 등은 봄 기지개를 켜는데 도움이 될 만한 신작들이다.

◇11일은 짜릿한 스릴 대결

▲맨츄리안 켄디데이트(감독 조너선 드미, 주연 덴젤 워싱턴·메릴 스트립, 129분, 15세 이상)

정치인은 지구상 어느 극장을 가더라도 가장 욕먹는 직업으로 등장한다.

할리우드에서도 정치인은 늘 조롱의 대상이다.

대개 권력의 탐욕에 빠져 사리사욕만 채우는 배역을 맡는 정치인은 사악한 인물이거나 비웃음의 대상이니 말이다.

'양들의 침묵'으로 유명한 조너선 드미 감독의 신작 스릴러 '맨츄리안 켄디데이트'는 정치인을 인간의 뇌까지 조작하는 사악함의 극치로 묘사한다.

걸프 전 영웅 벤 마르코 소령(덴젤 워싱턴)은 전쟁이 끝난 후 12년간 같은 악몽에 시달린다.

자신의 전우들도 똑같은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자신의 분대원들이 세뇌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갖게 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뛰어드는데….

'기억 조작'이란 다소 황당한 소재이지만 워싱턴 정치인들의 탐욕을 매개로 설득력 있게 그려낸 느낌이다.

'양들의 침묵', '필라델피아' 등 드미 감독의 전작들에서 느낄 수 있었던 팽팽한 긴장감을 이 영화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느라 한시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영화 속 음모들이 마르코 소령의 피해망상증에서 나온 주장인지 아니면 또 다른 진실이 숨어 있는지 정신없이 몰입하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 밝혀지는 사실도 대박이다.

▲스파이더(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주연 랠프 파인즈·미란다 리처드슨, 98분, 18세 이상)

영화 '스파이더'는 그동안 모기, 바퀴벌레, 파리 등을 등장시키며 생물학적 호러의 거장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열네 번째 작품. 제목만 보고 있으면 감독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영상이 떠오를 법하나 이 영화에서는 그러한 기대가 소용이 없다.

거미줄을 메타포로 한 사내의 과거 여행을 그린 차분한 사회 심리극이다.

자신을 아직도 열 살 소년이라고 생각하는 정신질환자 클레그(랠프 파인즈). 그의 의식 속에서는 과거의 끔찍했던 기억들이 마치 퍼즐의 조각처럼 이리저리 순서 없이 펼쳐진다.

배관공이었던 아버지와 정숙한 어머니의 이유 모를 불화, 술집에서 만난 금발의 창녀와 섹스하는 아버지, 어느 날 어머니 대신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창녀, 그리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하는 장면, 아버지와 금발 창녀와의 이어지는 음탕한 생활 등…. 결국 이 어린 소년은 어머니를 죽게 한 장본인인 창녀를 살해한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정작 죽은 사람은, 이미 살해됐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어머니인 것. 어머니의 시체 앞에서 아버지는 울부짖는다.

"너는 네 엄마를 죽였어."

감독은 클레그의 심리를 통해 거미줄처럼 빡빡한 틀 안에 갇혀 사는 사람처럼 극단적으로 고립됨으로써 극도로 황폐해진 현대인들의 내면풍경을 담아냈단다.

강박증과 환영에 시달리는 역을 완벽히 소화해낸 랠프 파인즈의 연기가 압권.

◇18일은 통쾌한 액션 대결

▲잠복근무(감독 박광춘, 주연 김선아·공유, 111분, 15세 이상)

강력계 악바리 여형사 천재인(김선아). 학창시절 강북을 평정한 쌈장이었으나 각고의 노력 끝에 '합법적인 주먹의 직업'으로 거듭난 그녀. 그런 재인에게 일생일대의 위기와 함께 중요한 임무가 주어졌다.

바로 사건의 열쇠인 조폭 부두목의 소재파악을 위해, 숨겨진 딸 차승희가 다니는 학교에 위장잠입하라는 것.

형사가 범인을 잡기 위해 위장한다는 스토리는 코믹 형사물에서 고전적으로 쓰이는 낡은 소재이다.

그래서 이런 류의 영화들이 식상함을 감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방법은 웃음 코드에 기대는 것. '잠복근무'도 여기에서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는다.

그간 코믹 연기에 있어서는 탁월한 재능을 선보였던 김선아가 주연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코미디 외에 액션의 수위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이 특색이다.

기존 코믹 영화와는 달리 화려한 볼거리를 많이 만들어내기 위해 감독이 배우들에게 고감도 액션 연기를 수시로 주문했다는 것. 처음으로 와이어 액션에 도전했다는 김선아의 몸이 타박상, 근육통 등으로 촬영 내내 편할 날이 없었다는 후문이 이를 증명한다.

조폭들과 30대 1로 대결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뛰어난 태보와 절권도 실력을 볼 수 있다는데.

▲호스티지(감독 플로렌트 에밀리오 시리, 주연 브루스 윌리스, 112분, 15세 이상)

'호스티지'는 감독과 주연 배우 이름만으로도 액션 영화광들을 흥분케 할 만하다.

영화 '네스트'로 액션 영화감독으로서의 뛰어난 자질을 보여준 플로렌트 에밀리오 시리와 '다이하드' 시리즈를 통해 자신만의 아슬아슬하고 숨막히는 액션을 선보이며 할리우드 액션 스타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브루스 윌리스가 손을 잡았으니까.

브루스 윌리스는 이번에도 다이하드처럼 최악의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진퇴양난에 빠진다.

통제가 불가능한 사이코 인질범과 협상 자체가 되지 않는 마피아 사이에서 얽히고설킨 인질을 구출해야 하는 네고시에이터로 나서는 것.

최첨단 보안 시설로 완전히 폐쇄된 저택 안에 붙잡힌 인질들과 탈출로를 찾을 수 없는 인질범, 그리고 저택의 비밀통로에서 펼쳐지는 목숨을 건 도주와 추격은 스릴러 영화만의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또 예상을 뛰어넘는 스토리와 숨막히는 역전과 반전의 전개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이 인질이 된 양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

미국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이 영화가 무려 19주 동안 잠식했던 이유는 뭘까. 날이 갈수록 더욱 섬세한 터치로 미묘한 감정선을 제대로 컨트롤하고 있는 브루스 윌리스의 연기력 덕분이다.

이 영화에서도 그는 몸을 던지는 과감한 연기로 관객들의 시선을 줄곧 붙잡을 태세다.

이미 50세가 된 그가 예전의 날렵한 액션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사진: 영화 '맨츄리안 켄디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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