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대개 이 말이 나오면 '깨깽!'하며 죽었다. "너 몇 살이야?"라는 말보다 훨씬 더 우선한다. 논리가 필요 없다. 살아온 세월로만 서열을 매기던 그 시절에 이 말 한마디는 모든 상황을 뒤엎을 정도로 가공할 힘을 발휘했다. 가히 상대방의 기를 꺾는 '지존의 어투'가 아닐 수 없다.
'혼전임신'. 결혼도 하기 전에 임신부터 하는 일이다. 이 단어에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라는 말이 태생적으로 따라 붙는다. 그런데 그 치명적인 이야기를 교육방송의 학원 드라마처럼 경쾌하게 그려내니 사회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영화 '제니, 주노' 이야기다.
'제니, 주노'는 이제 중학생이 된 아이들이 임신을 하고, 부부처럼 알콩달콩 '연애'를 하는 영화다. 이 영화가 논란을 던진 것은 이제까지 혼전임신의 위험을 전해주던 여고생을 넘어 여중생이 전면에 나섰다는 점이다.
사실 중학생이라면 가임(임신가능) 연령의 '극점' 아닌가. 영화제작사에서도 이를 걱정한 듯 "예전 춘향과 이도령도 이 나이또래였다"며 옹호했다. 거기에 대 로망드라마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도 10대. 나이로만 따지면 이팔청춘이니 요즘 중학생이 맞는 것 아니냐는 식이다.
그러나 평균연령 40세이던 시절의 이야기를 80세로 늘어난 요즘에 맞추는 것은 억지처럼 여겨진다. 감독은 극중 제니가 속옷만 입은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준다. 관객의 에로틱한 시선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관객이 에로틱하게 느껴야, 제니의 임신이 현실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든 관객에겐 애처롭게, 나이 어린 관객들은 "쟤, 왜 저래? 저런 차림으로 자는 애가 어딨어?"라는 시선을 받았다.
'제니, 주노'를 시작으로 요즘은 혼전임신이 대중문화의 키워드가 됐다. TV드라마에서도 혼전임신이 넘쳐난다. 지난 7일부터 방송 시작한 김재원과 유진이 출연하는 MBC드라마 '원더풀 라이프'도 혼전임신을 그리고 있다. 일일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도 혼전임신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동안 혼전임신은 '끔찍한 연애질'(?)의 산물이었다. 무분별하고 무절제한 성적 타락. 조신한 가정이라면 있어서는 안 되는 자녀 '절대 금기'. 그래서 혹시 집안에 이런 일이 생기면, 부모는 하늘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러나 요즘은 예전과 다르다.
애가 애를 낳은 '제니, 주노'의 두 '중학생 부모'는 흡사 애완견 입양하듯 받아들인다. "우리가 낳을 거예요. 낳을 거란 말이에요!"라며 달려든다. 낳을 후 어떻게 기를 것이며, 또 그 애의 인생은 어떻게 될 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미워도 다시 한번'처럼 울며불며 평생을 한으로 여기는 것과 판이하다.
요즘은 정말 사회가 터보엔진을 단 것 같다. 엄청난 스피드로 변하고 있다. 한국의 한 역사학자가 말했다. "부엌에서 밥 비벼 개(犬) 조금 주고 당신이 먹던 시대가 바로 할머니 시대였잖아요?".
남은 밥과 나물을 바가지에 비벼 먹다가, 개를 보고는 처량하다며 함께 나눠 드시며 '동병상련'(?). 이런 '부엌데기의 한'은 수백 년간 이어오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 최근 50년의 변화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보다 더 빨리 변하고 있다.
'혼외정사'도 그렇지만 혼인 밖의 일은 늘 가혹한 시선을 받아왔다. 결혼도 안한 몸으로 아기를 갖는 '혼전임신'은 더할 나위가 없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단 법이다. 결혼은 안하고 '혼외정사'만 나누고, '혼외임신'만 한다? 결혼은 싫지만 그 달콤한 열매는 따 먹겠다는 식이다.
(에로영화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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