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훨씬 지났지만 꽃샘 추위가 매섭다. 해마다 봄이면 기분장애-우울증, 조울증 등의 환자가 늘어난다. 올해는 배우 이은주씨의 자살이 준 충격 때문인지 유난히 우울증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는 떠나버린 사랑의 상실감으로 유발된 우울증을 겪는 한 남자의 아픔이 진하게 서려있다.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은 우울증을 일으키는 주요 요인이 된다.
사운드 엔지니어인 상우는 라디오 아나운서인 은수와 방송 제작 때문에 처음 만나게 된다. 둘은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한적한 산사를 찾게 되면서 사랑이 싹튼다. 바람에 이는 댓잎 소리, 한밤중에 내리는 함박눈 소리를 녹음하면서 그들의 사랑은 자연스레 익어간다. 그러나 그해 여름부터 둘의 사랑은 퇴색되기 시작한다. 열병 같은 사랑에 빠진 상우와 달리 은수는 '사랑은 변하는 거야'라며 떠나버린다. 그해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상우는 깊은 은둔 생활을 한다.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흘러가버린 사랑에 대한 상실감으로 무기력하고, 어느 것에도 흥미를 갖지 못하고, 대인관계를 꺼리며 6개월쯤을 상우는 그렇게 보낸다. 상우의 감정과 행동으로 보아 그는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로 인한 주요 우울장애를 겪고 있다.
우울증은 가장 흔한 정신장애로, 사는 맛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다. 사회심리적인 요인이 우울증의 초기 발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열살 전에 부모를 상실하거나 죽음, 이별, 실패, 중요한 사람과의 불화 같은 생활 사건이 우울증과 관계 있다. 프로이트는 자신과 상실한 대상을 동일시하여, 분노감을 자기에게로 돌리는 것을 우울증이라고 했다. 우울증 환자는 상실에 대하여 심각한 자기 멸시감을 갖는다.
상우의 할머니는 노인성 치매 환자다. 할머니는 남편의 외도로 평생 외롭게 살았으나, 남편과의 행복했던 한 시절만 기억하고, 기차역에 나가 남편을 기다린다. 어느 봄날, 할머니는 새색시 시절 남편에게 받은 연분홍 치마를 차려입고, 먼 기억 속의 남편을 찾아 집을 나간다. 그 후 할머니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기억장애와 판단장애가 있는 치매 환자인 할머니의 애절한 망부가는 상우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축 졸업 동방 유치원/ 재잘거리는 꼬마와 엄마들 사이에서/ 꽃을 팔던 젊은이/ 그의 손과 그 손의 프리지아를 보면서도/ 난 죽음을 생각한다/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음에 임박하기 위해/ 그와 나는 프리지아 꽃을/ 들고 있다/ 프리지아 향기처럼/ 조금씩 시들어/ 아무도 오래/ 여기 살아남을 자는 없다.'
권혁진 시인의 '프리지아 꽃을 들고' 라는 시에서 상우의 상처 깊은 이별과 허무한 존재감을 읽을 수 있다. 봄날 화사한 햇살 아래 꺾여진 프리지아 꽃향기가 점차 희미해져가듯, 벚꽃의 낙화를 넋을 잃고 쳐다보는 우울증에 빠진 상우의 사랑도 인생도 그렇게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하다.
우울증의 한가운데에서는 깊은 자살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두렵고 힘든 우울 증세에 짓눌리면, 용기 있게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자. 의사는 정확한 약물을 처방하고, 깊은 개인적인 문제를 상의하는 진실한 동행자가 될 것이다. 우울증! 현대의학에서는 가장 잘 치료되는 병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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