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서 '왕따'된 미국

입력 2005-03-05 08:30:01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회의 폐막 성명에 낙태

를 반대하는 취지의 문구 삽입을 추진하려던 미국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 다른 회

원국들의 반대여론에 굴복해 결국 이를 철회했다.

이 회의에서 유엔 회원국들은 1995년 중국 베이징(北京) '세계여성대회'에서 채

택된 양성(兩性) 평등 실현원칙을 재확인하는 성명을 채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느닷없이 이 성명에 "베이징 대회를 통해 낙태의 권리를 포함해

어떠한 새로운 인권조항도 새롭게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분명히 하는 문구를 삽입하

자"고 제안해 논란이 야기됐다.

1995년 당시 빌 클린턴 전(前) 대통령 행정부도 베이징 선언의 채택에 찬성했으

나 이후 보수층의 지지를 업고 당선된 조지 부시 대통령은 국내의 보수 회귀 분위기

를 의식해 유엔에서 낙태 반대 입장을 밀어붙이려 한 것이지만 다른 유엔 회원국가

들은 당연히 이에 반발했다.

이 문제에 관해 거의 모든 국가들로부터 반대에 직면한 미국은 "유엔 문서에 낙

태의 권리가 명문화되지 않은 것으로 만족한다"면서 물러섰다.

여성지위위원회 회의 미국 대표인 엘런 사워브레이 대사는 4일 유엔본부에서 가

진 기자회견에서 베이징 선언의 문구수정 노력을 철회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사워브

레이 대사는 그러나 이런 방침이 '굴복'이 아니라는 점을 애써 강조했다.

사워브레이 대사는 "1주일 간의 심도있는 협의를 통해 많은 유엔 회원국 대표들

이 낙태와 같은 문제는 각국 정부에 방침을 맡기는 것으로 베이징 선언을 해석하고

있음을 확인해준 데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많은 국가들로부터 베이징 선언이 낙태의 권리를 확인한 것이 아

니라는 우리의 해석이 자신들의 해석과 일치한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따라서 선언

문 수정시도는 불필요한 일이 돼 버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회의를 '사실상의 승리'라고 본 사워브레이 대사의 언급과는 달리

지난 2주간 이 문제를 두고 열린 유엔 회원국들의 토의에서 미국은 '왕따' 신세를

면치 못했다. 130개국의 대표 6천여명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미국의 입장을 지지한

국가는 거의 전무했다.

오히려 '베이징' 선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와 가족, 교육, 정치 등 부문

에서 여성 평등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문제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려고 했던 많은 국

가의 대표단은 미국의 '엉뚱한 딴죽걸기'에 분노를 표시했다.

결국 미국은 '베이징' 선언이 낙태의 권리를 인정한 문서가 아니라는 '비공식

확인'을 받아냄으로써 국내 보수층의 입맛에 영합하는 효과는 거뒀을지 모르지만 '

국제기구에서 일방적인 주장만을 펼치는 국가'라는 이미지는 더욱 굳어지게 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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