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혼비 지음/ 문학사상 펴냄
눈을 감고 축구 경기 장면을 상상해보자. 경기장에는 수만 개의 입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수만 개의 시선이 단 하나의 물체에 집중된다. 그라운드에는 땀에 젖은 선수들의 가쁜 숨소리로 가득하고 관중석은 환호와 탄식이 엇갈린다. 수백만 명을 울리기도 웃기기도 하는 건 고작 어른 머리만한 축구공 하나다.
세계 3대 축구리그로 꼽히는 영국 '프리미어리그'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의 '세리에A'의 경기 장면을 보면 여러번 놀라게 된다. 선수들의 높은 경기력과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 수는 물론이고 홈팀에 대한 응원은 거의 광적인 수준이다. 프로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마다 온 도시가 들썩이며 응원의 함성을 높인다.
이에 비하면 국내에서 축구는 비인기 스포츠나 다름없다. 월드컵 4강의 영광이 있었고, 출범한 지 20년을 훌쩍 넘긴 프로축구가 있지만 깊숙이 뿌리를 내린 축구 문화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통해 애국심을 확인하고 인터넷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축구에 대한 높은 식견을 자랑하는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국내 프로축구 경기는 횅하게 비어있는 관중석을 배경으로 치러진다.
'피버 피치'는 끓어오르는 유럽 프로 축구의 열기가 부러운 축구 팬들의 화(?)를 돋우는 책이다. '열기 넘치는 축구장', '불타는 그라운드'쯤으로 해석될 '피버 피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날 축구팀에 푹 빠진 저자 닉 혼비 자신의 열정과 삶의 기복을 그린 책이다. 저자는 영화로 만들어져 인기를 모은 '하이 피델리티', '어바웃 어 보이'의 작가다.
닉 혼비의 축구 사랑은 유별나다. 스스로 '강박증'이라고 표현할 정도. 저자는 11세때 아스날에 반해 버린 뒤 평생 축구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애인과의 데이트 약속보다 축구관람이 우선인가 하면 아스날의 경기가 있는 날엔 흥분을 억누르지 못해 경기장에 몇 시간 전에 도착하고 아스날 홈구장 근처로 이사가는 것이 오랜 소원이다. 잠이 오지 않을때 여태까지 본 아스날 선수를 하나하나 꼽아보기도 한다.
이 책은 축구를 중심으로 한 저자의 성장 소설이다. 저자는 부모의 이혼과 여자친구와의 이별, 반복되는 실업 상태에 정신과 의사를 찾아야 할 정도의 우울증에 이르기까지 갖은 인생의 굴곡을 아스날에 대한 애정을 통해 극복해간다. 또 축구광 자신의 행태뿐만 아니라 축구 경기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저자는 축구 경기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말한다. 영국과 유럽의 지명 가운데 대부분은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원정경기나 스포츠 신문을 보면서 알게 된 것이고 훌리건들을 통해 사회학에 대한 관심과 현장학습 체험을 갖게 됐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시간과 감정을 투자하는 일과 비판적 시각없이 온전히 같은 대상을 응원하고 소속감을 갖는 것의 가치"도 배웠다.
이 책은 1968년부터 1992년까지 일기를 쓰듯 흘러가는 유쾌하게 읽히지만, 1970~80년대의 잉글랜드 축구계가 낯설 대부분의 독자에게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선수들의 이름과 구단조차 생경하게 느껴지는 독자에게 당시 경기 장면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다가 혹은 영화를 보거나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10년, 15년 전에 본 왼발 발리슛이나 오른쪽 코너킥이 떠오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책이기도 하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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