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지음/삼우반 펴냄
명문가(名門家), 상류층 가문이라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를까. 솔직히 뼈대 있는 집안 이야기는 기분 나쁜 주제이기도 하다. 흔히 보통사람들은 "그래 조상 잘 만났구나, 그런데 그 잘난 가문에 있으면서 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했지"하며 흥분하기도 한다. 자신의 집안도 명문가가 되었으면 하는 열망과 호기심이 팽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관심 내지 경멸의식까지 동반하는 이중적 감정은 나만의 심정은 아닐 터이다.
그래서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김학수 전문위원이 학문과 벼슬을 아우른 우리나라 대표적인 명가의 내력과 가풍에 대해 쓴 '끝내 세상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도 대대로 기득권을 유지하며 버텨온 집안의 포장된 미담이 아닐까 하는 선입견으로 책을 열게 된다. 하지만 읽어가는 동안 계속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방대한 고문서의 수집과 분석을 통해 문집이나 족보 등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문화사 및 생활사적 내용들까지 발굴한 저자의 노력이 책 속에 생생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책은 '어떻게 살아온 집안이 명문가이며, 과연 상류문화란 어떤 것일까'라는 의문으로 시작한다. 흔히들 명문가라고 하면 선대의 업적, 지위, 재산과 사회적 영향력 등을 조건으로 꼽는다. 저자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존재했던 명가의 1차적 조건은 벼슬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벼슬을 유지하는 집안이라고 해서 명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명가가 되기 위해서는 가풍과 저력이 있어야 하고, 당대인에게 모범이 되거나 역사 발전에 기여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청백(淸白)이나 효열(孝烈), 도학이나 문한(文翰), 또는 절개나 의리일 수도 있다. 저자가 내세우는 명가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집안의 외형적인 것보다 집안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책에는 안동 김씨 청음 김상헌 가문, 반남 박씨 서계 박세당 가문, 한산 이씨 아계 이산해 가문, 연안 이씨 월사 이정구 가문 등 벼슬을 뛰어넘는 가풍과 저력이 뛰어난 네 가문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유수한 가문들 가운데 이들 가문을 명가로 꼽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청음(淸陰) 가문에서는 청백과 충절, 그리고 학술을 통해 도약하는 힘을 발견할 수 있었고, 서계(西溪) 가문에서는 타협하지 않는 지성의 강단에 매력을 느꼈다. 월사(月沙) 가문에서는 화려한 문한 전통과 시련을 극복하는 저력이 돋보였고, 아계(鵝溪) 가문에서는 사환과 은거를 절묘하게 조화시키려 했던 사대부가의 아취가 강하게 느껴졌다.'
나와 상관 없는 남의 집안 이야기라고 해서 지루할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도 좋다. 단순히 각 가문의 내력과 가풍을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대 양반 가문의 삶과 문화에 대해서도 상세히 밝히고 있다. 각 가문의 주요 주거지와 별업(별장), 또 그곳에서의 삶의 모습을 저자는 각종 문집류와 족보, 분재기, 교서 등 가전 고문서의 분석을 통해 생생히 복원한 것. 아울러 저자가 수집하고 연구한 각종 고문서 및 현장 답사 자료 등 150여 종의 화려한 도판 자료를 통해 당시의 실제 생활과 문화를 실감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이 책의 매력 포인트이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강조한 문구가 언뜻 떠오른다.
'로마가 천년 간 세계의 최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상류층이 솔선수범해 전쟁에 나가 피 흘리고 남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환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덕분이었다.' 공직을 빙자해 받은 뇌물로 재산을 불리고, 투기로 축재하는 '졸부'들이 떵떵거리며 사는 요즘이기에 옛 명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더욱 그립다. 407쪽, 1만3천 원.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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