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옛 城을 찾아서-(7)프랑스 르와르 샹보드 성

입력 2005-03-02 15:42:14

르와르 지방의 성들은 고대의 3지방(오를레앙, 투렌, 앙주)과 남쪽으로 북베리 지역에까지 걸쳐 있다. 그 역사는 갈로-로만 평화 시대를 지나, 바르바릭 시대, 메로빙거시대, 카롤링거 르네상스에 이른다. 이 긴 역사의 기간 동안 르와르는 칸데스에서 397년에 죽은 주교 생 마르탱 시기를 기점으로 가톨릭 발전의 중심지였다. 이후 로마 제국의 사회, 행정, 언어 문화의 유산으로서 교회의 번성은 군주적 왕권 사회와 함께 발전하였다.

르와르 지역의 성들은 주변의 빼어난 자연경관이 자랑이다. 왕실 사냥에 가장 적합한 조건의 숲, 또한 풍요로운 자원을 바탕으로 자생한 뛰어난 공예, 목수, 도공 기술자들, 교회, 성의 건축 재료로 쓰이는 드넓은 석회암 평원, 곡식, 와인, 과일 및 각종 꽃과 정원을 가꾸기에 좋은 땅과 기후, 멋진 경치를 관람할 수 있는 적당한 높이의 언덕이 8천 개의 크고 작은 성을 짓게 한 바탕이 됐다.

르와르의 모든 성에서는 와인을 제조하고 있다. 오늘날 이곳을 둘러싼 각종 고대 유품들이 퇴색되면서 50세대 이상의 자손들이 터전을 잡고 살아온 이 지역을 떠나고 있다. 아직 옛 조상의 삶의 방식을 가지고서 호기심과 흥미로 가득한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지역 거주민들이 남아 있지만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언젠가 오래된 우리 인류 역사의 포도주 제조방식, 고딕 건축 양식 등의 기술, 진한 와인 같은 오래된 전통 프랑스 고어의 액센트들을 우리는 TV에서만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샹보드성은 블로와 백작 소유였다. 프랑스어 뜻으로 '곡선의 여울'이란 뜻이다. 이 성은 요새로서 비밀 관리되었기 때문에 12세기부터 세상에 많이 알려졌으며 전쟁과, 창고 또 사냥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이후 이 성의 주인인 루이 7세와 그의 사위는 특히 이곳에서 사냥을 즐긴 것으로 유명했었다.

1519년 찰스 8세를 따라 프랑스로 건너온 이탈리아의 건축가는 나선형 계단으로 성의 조명 타워와 조화를 이룬 디자인으로 목조 모텔을 선보였다. 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당시 여러 개의 성을 새롭고 감각 있는 디자인으로 축조하였으나 이 성은 그의 사망 후 4개월 후에 본격적으로 공개됨으로 인해 그가 직접 디자인에 관여한 것은 아니다.

왕이 성에 몇 달 혹은 몇 년씩 머무를 때는 모든 것이 함께 이동한다. 왕의 모든 물건, 주방, 책, 장식물, 개, 각종 시종과 신하들, 행정적 업무서류 등 하나의 국가가 이동하는 것과 같았다. 나폴레옹 혁명 이후 일부 파괴된 성은 나폴레옹에 의해 마살 베르티에에게 헌사되었으며 그의 미망인이 1821년 이 성의 백작이 된 헨리의 아들에게 팔았다. 이후 1930년 현재의 정부가 이 성의 소유주가 되었다.

글: 김정길 본사 명예주필

사진: 권정호 한국사진기자회 명예회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