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

입력 2005-03-01 11:38:14

영화 '해안선'은 환자가 망상으로 인해 남을 해치거나 살해했을 때,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하는 책임한계를 생각해볼 수 있는 법정신의학적 소재를 제공한다. 법정신의학이란 정신건강과 법적인 문제가 중첩되는 분야를 연구하는 정신의학의 세부 분야로, 폭력, 형사책임 능력에 대한 정신 감정, 범법 정신질환자의 진단과 치료 등을 담당한다.

'해안선'의 주인공 강 상병은 군복무 중에 간첩을 잡겠다는 열의에 차 있다. 어느 날, 그는 민간인 출입 금지의 철책선 안에 들어온 마을 청년을 간첩으로 오인해 사살하고 만다. 군부대에서는 강 상병을 간첩 잡은 해병으로 추켜세우며 포상휴가까지 준다. 그러나 휴가에서 복귀한 강 상병의 정신적 충격은 동네 사람들의 비난과 부대 동료들의 따돌림으로 더욱 증폭된다. 결국 그는 적응장애로 의병 제대를 하지만, 부대 근처를 배회하며, 엉뚱한 행각을 벌인다. 강 상병은 점차 피해망상을 보이며, 귀신처럼 나타나 동료들을 하나씩 살해한다.

강 상병은 어떤 정신 상태이며, 살인범으로서의 그의 책임은 어디까지 일까. 그가 살인범으로 기소되었다면, 정신병이 의심되므로 우선 정신감정을 의뢰한다. 정신과 의사는 강 상병과 가족을 면담하고, 정신상태검사, 신체검사, 심리검사 등을 통해 살인을 저지를 당시의 정신장애 여부를 평가한다. 형법 제10조에 심신상실자의 행위는 무죄라고 되어있다. 그는 정신병으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는 심신상실자이므로 무죄다. 그 대신 치료감호를 선고받고, 치료감호소로 옮겨져 전문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될 것이다.

37세에 권총 살인범으로 기소된 윌리엄 마이너는 세계 최고 권위의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찬의 핵심 인물이었다. 예일 의대 출신 의사로 최고의 지성인인 마이너의 범행에 대해서 모두 의아해했다. 그는 정신분열병으로 수년간 피해망상에 시달렸다. 어느 날, 우연히 지나가는 남자를 자기를 죽이려고 온 가해자라고 믿고 권총을 발사했던 것이다. 법정에서 마이너에게 '맥노튼 법칙'이 적용되어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 후 마이너는 영국의 정신병 범죄자 수용소에서 평생을 보냈다. 거기서 그는 정신병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 20년 동안 수많은 빼어난 문장들을 채록하여 사전 편찬에 기여했다.

'맥노튼 법칙'이란 정신이상자의 책임성의 기준을 마련한 최초의 판례를 말한다. 영국의 정치가 로버트 필 경이 가해자라는 피해망상을 가진 맥노튼은 필 경을 살해할 목적으로 그의 집앞에서 기다리다가 마침 문을 나서는 필 경의 비서를 권총으로 쏘아 살해하였다. 이때 재판부는 정신병을 이유로 맥노튼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정신질환자들은 정말 난폭하고 위험할까. 얼마 전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정신감정 결과 '그의 정신상태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고 밝혀지자, 세간에서는 사람이 미치지 않고서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냐며 의아해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신질환자의 폭력행동의 비율은 일반인에 비해 높지 않고, 미국의 경우 정신질환으로 인한 폭력은 전체 폭력의 3%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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