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 에세이 낸 '맘마미아' 헤로인 박해미

입력 2005-02-28 08:50:08

내 삶을 거울 삼아 여성들 희망 얻었으면…

"세상에 너무 늦은 때는 없어"

요즘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를 달구고 있는 뮤지컬 '맘마미아'의 헤로인 박해미(41)씨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끼'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무대에서나 밖에서나 철철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그녀의 눈빛과 몸짓, 그리고 거침없는 말솜씨는 무척 강렬하다.

또 격정적이고 도발적이며 솔직하다.

이런 성격이 그녀의 인생을 다양하게 수놓은 원인이 아닐까.

박씨가 쓴 자전 에세이 '맘마미아, 도나의 노래'(이가서 펴냄)에는 그녀의 평탄치 않았던 40여 년 인생이 깨알처럼 담겨있다

성악을 전공했음에도 프리마돈나가 아닌 뮤지컬 배우로 눈을 돌리고 갑작스런 결혼과 동시에 무대를 떠나야 했던 이유, 이내 찾아온 파경, 그리고 아픔과 고통을 헤치고 새 삶을 찾아 무대에 다시 선 그녀의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참고 포기해야 할 일들이 무척 많지요. 한 아이의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동시에 일터에서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도록 강요 당하지요. 나와 비슷한 처지의 모든 여성들에게 가시밭길 같은 제 인생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책에는 특히 어린 나이에 반강제적으로 결혼하다시피 한 이후 남편의 의처증과 시부모와의 갈등 속에서 결국 아이까지 포기한 채 이혼해야 했던 어두운 과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임신 때문에 일을 쉬자 시어머니는 "밥이나 축낸다"며 구박했고, 남편은 폭력까지 썼다.

이미지가 생명인 배우로서 어두운 과거사를 낱낱이 밝힐 필요가 있었을까? "예전에는 무조건 숨기고 싶던, 아니 잊고 싶던 기억이었지요. 그런데 40줄을 넘기면서 생각이 바뀌더군요. 힘들었던 내 삶을 거울 삼아 정체성 혼란을 겪을 시기인 또래 친구들이 희망을 얻을 수 있겠구나 하고요."

이혼한 뒤 그녀의 삶은 자식에 대한 그리움에 절망의 연속이었다.

새로 찾아온 사랑이 있기 전까지는. 하지만 그녀의 두 번째 사랑은 '사랑밖에 난 몰라'식의 철없는 위로에서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은 '그녀'뿐 아니라 '그녀의 삶과 일'까지도 사랑해줄 줄 알았고, 덕분에 그녀의 인생은 날개를 달게 된다.

"한 번의 실패는 또 다른 사랑에 거부감을 줬지요. 게다가 8세 연하의 남자였고. 하지만 그의 끈질긴 진심이 저를 다시 재기하게끔 만들었어요."

그녀의 인생 역정을 읽고 있으니 영락없는 '맘마미아'의 도나이다.

"실패한 사랑 때문에 상처받고 마음을 꾹 닫아버린 것도 그렇고, 도나가 예전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할 정도로 끼가 있었던 인물인 것도, 게다가 닫힌 마음을 열고 사랑을 되찾게 해 준 남자의 이름이 '샘'인 것마저 똑같았어요." 그래서 책 제목을 '맘마미아, 도나의 노래'로 지었단다.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이 제대로 능력을 펼치고 살기에는 힘든 점이 너무 많습니다.

저 또한 그러한 삶을 살았고. 하지만 이젠 달라져야 합니다.

여성들도 자식과 남편에게 얽매인 자신의 삶을 한번쯤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가족들(특히 남편)의 적극적인 협조가 무척 중요한 이유이지요."

아픈 과거를 들추어내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열정을 억누르고 살아오느라 너무나 힘들었던, 사랑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고, 주어진 운명에 맞서지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견디고 버티느라 온 힘을 다 쏟아버리는 한때의 나와 같은 여성들이 이 책을 읽고 그들도 나처럼 자신 안에 담긴 에너지를 터트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세상을 살면서 너무 늦은 때는 없으니까요."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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