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3기 앓고 있는 황진옥씨
'남편을 잃고 시어른 병간호를 혼자 맡아하다 자신도 암 선고를 받은 이웃이 있어요. 이렇게 불행을 따라 흘러가야만 하는 한 여자,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지만 사회의 따뜻한 정을 모아 작은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줄 수 없을까요?'
사회복지사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지켜보면서 가슴 언저리가 너무 아파온다며 어떻게든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22일 오후 그 이웃을 만났다.
영세민아파트에서 만난 황진옥(55·여)씨는 지난해 12월 중순쯤 폐암3기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기침할 때마다 등이 묵직하게 아파와서 이상해하던 터였다.
병원에서는 3번의 약물치료를 꼭 받아야한다고 했지만 황씨는 단 한번의 항암치료를 끝으로 병원 문턱에도 가지 않았다.
다만 감자를 갈아 마시거나 약전골목에서 1만2천 원에 사온 살구씨 가루물을 섭취하며 하루하루 연명해가고 있었다.
"100만 원이 훌쩍 넘는 약물치료를 감당할 수 없어요. 치료비가 있다면 모를까 없는 살림에 내 욕심만 차릴 수는 없어요."
11년 전까지 황씨는 남편과 가내수공업으로 작은 양말 봉제공장을 경영했다.
하지만 '빚은 져도 이웃은 도우며 살자'고 하던 못난(?) 남편이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떴고 가세는 급속도로 기울었다.
치매, 중풍으로 거동이 힘든 시아버지와 학교에 다니던 세 딸을 식당 보조와 파출부로 뒷바라지하기에는 몸과 마음이 너무 고됐다
그리고 남편이 남기고 간 빚 때문에 매달 몇십만 원씩의 이자를 꼬박꼬박 물어야 했다.
"애들 셋 출가시킬 때까지만 고생하며 살자고 이를 꽉 물었어요. 그래도 착하고 곱게 크는 애들 보는 낙으로 살아왔는데 내 몸이 많이 지치긴 했나봐요. 애들한테 미안해서라도 일어나야하는데···."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5년 전 황씨는 코 쪽에 암세포가 생겨 큰 수술을 받았다.
목쪽의 흉한 수술자국과 휘어진 코는 후유증이었는데 연신 콧물이 흘러나왔다.
훌쩍거리는 것이 힘들어보였다.
거기다 왼쪽뺨을 인공철판으로 덧대고 허벅지살을 붙여놓아 얼굴이 한쪽으로 몰려있었다.
황씨가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심어놓은 인공눈물샘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폐암은 5년 전 암세포가 끈질긴 생명력으로 폐쪽으로 전이된 것이라고 한다.
황씨에게는 3명의 딸이 있다.
하지만 황씨의 곁을 떠나지 않는 둘째 딸(24)은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사회적응을 거의 못하고 있는 상태. 밥을 챙기고 목욕을 시키고 청소를 하며 하루를 보내는 착한 딸은 하루 종일 말이 없다고 했다.
"아빠가 저 세상으로 가고 많이 바빴어요. 둘째는 말도 없이 학교와 집만 왔다갔다 했는데 그게 다 병 때문이었던 거예요. 착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얘기를 듣고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우리 애가 남들과 말도 하고 바깥 출입도 하며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살 수 있을 때까지만 살 수 있게 해주세요."
냉장고 한 쪽에 굵은 글씨로 둘째 딸이 또박또박 적어놓은 메모지가 붙어있다.
'상황버섯, 대추, 녹차, 고추, 키위, 오렌지, 유자, 딸기, 열무, 고춧잎, 피망, 시금치, 연근, 양배추, 부추, 고구마, 감자, 양파, 상추'. 엄마 아픈데 좋다는 야채와 과일을 잊지않기 위해 붙여놓은 말없는 둘째가 대견스러워 보였다.
저희 '이웃사랑' 제작팀 계좌번호는 대구은행 069-05-024143-008 (주)매일신문입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설명 : 황진옥쓴?폐암 진단을 받고도 병원에 갈 형편이 안돼 5년간 집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둘째 딸이 엄마 곁을 떠나지 않고 간병을 한다.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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