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위한 과학/김수병 지음/동아시아 펴냄
요즘 등장하는 공포영화를 보고 있으면 공포의 대상은 대부분 유전자 조작 등으로 실험실에서 태어난 다양한 괴물들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만든 영화 '미믹'에서 사람을 사냥하는 것은 실험실에서 유전자 재조합으로 탄생한 거대한 변종 바퀴벌레였다. 바다로 눈을 돌리면 거대한 괴물로 돌변한 상어들이 인간을 먹잇감으로 삼은 '딥 블루 씨'같은 영화들을 흔히 찾을 수 있다. 이 같은 영화들이 주는 메시지는 다름 아닌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인간의 과학적 오만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것이 아닐까.
과학전문 칼럼니스트 김수병씨가 지은 '사람을 위한 과학'은 첨단과학 기술에 얽힌 진실과 오해를 조목조목 파헤치며, 심각한 첨단 과학병에 걸린 인류의 어리석음에 유쾌한 메스를 들이댄다. 영화라는 상상의 공간에서 활동하는 이 괴물들이 당장은 현실세계로 뛰쳐나오지 않겠지만, 저자는 유전자변형 식품에 눈을 돌리라고 경고한다. 식량난을 극복하기 위해 인류가 생명공학의 힘을 빌어 탄생시킨 GMO(유전자변형 농작물) 식품들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인체 유해성과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던지며 우리에게 영화 속 공포에 버금가는 두려움을 주고 있다는 것. 기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2의 녹색혁명'으로까지 불리는 이 식품들이 언제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대며 우리를 위협할지 모를 일이다.
한동안 첨단과학은 우리 생활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데 대해 절대적 신뢰를 보냈다. DNA 이중나선 발견 이후 50여 년 만에 완성된 '인간 게놈 지도'는 100세 청춘을 보장하고, 도우미 로봇은 인간을 고된 노동에서 해방시켜줄 대안이 될 것이라고 믿는 식이었다. 첨단과학에 대한 신뢰는 이게 끝이 아니다. 알약 하나만 있으면 대머리를 극복하고 기억력을 회복하며, 유비쿼터스 환경은 일상의 난제를 해결할 것만 같았다. 분명 영리한 인간 '호모 사피엔스'가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로 진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저자는 첨단과학은 '열려라 참깨' 식의 주문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각종 첨단과학 제품들은 효용성을 앞세워 위험과 한계를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비만의 적으로 각종 수난을 당하고 있는 지방(脂肪)을 예로 들어보자. 비만과 각종 성인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바람에, 음식이 귀했던 시절엔 보기만 해도 미각을 자극했던 지방의 신세가 가련하기만 하다. 그러나 지방을 마음껏 섭취하면서도 오히려 더 건강하게 살아가는 그리스 크레타섬 사람들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최근 들어 모든 지방이 나쁘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오히려 무조건 지방을 체내에서 제거하려 들 경우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
위장병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TV광고에까지 모조리 없애자고 떠들고 있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은 또 어떤가. 위 점막에 붙어사는 이 편모충 균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불과 20년 전이다. 때문에 인체의 건강을 위해 남김없이 제거돼야 할 유해한 균인지의 여부를 뚜렷이 밝히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오히려 이 균이 어린이들의 설사병 감염을 막아준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첨단과학에 대해 맹신하지 말 것을 충고한다. 그렇다고 과학을 모두 부정하고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사람을 위한 과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과학도를 겨냥했지만 일반인들이 읽기에도 크게 넘치지 않는다. 문제의식이라는 배낭을 메고 22가지 분야의 첨단과학 세계를 저자와 함께 여행하는 동안 독자는 과학이 결코 우리 생활과 떨어져 있지 않으며, 흥미진진한 학문임을 느끼게 된다. 316쪽, 9천800원.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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