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폴 겔랑 지음, 강주헌 옮김/효형출판사 펴냄
겔랑 향수인 '샹 다롬', '나에마', '삼사라'의 공통점은? 해답은 겔랑 가의 4대 회장인 장 폴 겔랑이 사랑하는 여인들을 위해 만든 향수라는 점이다. '샹 다롬'은 부인이 될 여인을 위해, '나에마'는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 카트린느 드뇌브를 위해, '삼사라'는 그의 또다른 애인을 위해 노력을 다해 만든 것이다. 이는 할아버지 자크 겔랑이 남겨준 좌우명과도 상통한다. 그것은 "한 가지는 기억하거라. 함께 사는 여인과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향수를 만들어라"는 것.
이 책은 최고의 후각을 지닌 조향사이자 유명 향수 브랜드인 겔랑의 4대 회장을 지낸 장 폴 겔랑의 삶의 발자취를 꼼꼼히 뒤따라가고 있다.
장 폴 겔랑은 47년간 향수 원료를 찾아 인도와 네팔 등 아시아를 비롯해 튀니지와 마요트섬 등 전혀 알려지지 않은 전세계 곳곳을 누볐다. 그는 선천적으로 예민한 후각을 타고 났으며 뛰어난 조향사로 알려졌지만 장은 원래 겔랑 가의 후계자가 아니었다. 겔랑 가는 가족기업이기 때문에 형제 가운데 단 한 명만이 회사 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원칙이 정해져 있었고, 형 파트리크가 화학공부에 매진하면서 회사 경영을 뒤이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때 장은 지독한 시력 저하로 친구들에게 놀림받아야 했으며 수학과 물리학에 취약해 학교생활이 전혀 즐겁지 않았고 단지 문학에 심취해 있을 따름이었다.
이때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어느날 황수선 정유(향수 원료)가 감쪽같이 사라지자 할아버지 자크 겔랑은 크게 낙담하고, 큰 기대 없이 그에게 황수선 정유를 만들어보라고 혼잣말을 한다. 그는 황수선 정유를 완벽하게 만들어내고 이를 본 할아버지는 당장 경영 후계자를 장으로 교체하게 된다. 이로써 장 폴 겔랑은 겔랑 가의 4대 회장으로서, 또 뛰어난 조향사로서 평생을 향을 만들어내는 일에 전념하게 된다.
이 책에는 향수뿐만 아니라 후각이 전하는 기억의 따스함이 곳곳에 묻어난다. 장은 태어난 이후 가장 첫 기억으로 어머니가 네 살때까지 만들어준 딸기파이 냄새라고 고백하고 있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어머니는 늘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딸기파이를 만들어주셨다. 이 때문에 딸기파이 냄새는 어디에서나 맡을 수 있는 평범한 냄새지만 언제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 어머니의 욕실에는 시험용 겔랑 신제품들이 즐비했고 이 공간은 황홀경에 빠뜨릴 만큼 행복한 공간으로 기억된다. 향수 가업을 제대로 잇기 위해 장은 당시로는 여행지로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인도, 네팔 등 아시아와 튀니지 등 전세계를 누비며 향수의 원료를 찾아나선다.
재스민과 백단향을 찾기 위해 인도로, 오렌지꽃향을 위해선 튀니지를 누볐고, 화산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 일랑일랑의 향을 구하기 위해 찾은 마요트 섬에서 원주민들과의 만남, 우정을 쌓기도 했다. 이처럼 47년간 향수 여행을 떠나온 저자의 여행담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여성만의 사치스러운 화장품'으로 알려진 향수에 대해 장 폴 겔랑은 단지 사치용품이 아니라 자연의 세계이자 예술, 사랑의 세계라고 표현한다. 또 음악과도 비슷해, 머리나 가슴 혹은 깊은 곳에 감춰진 음으로 향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2002년 조향사 일을 그만둔 장 폴 겔랑은 세계 각지의 향수 원료 공장의 대주주로, 지금까지도 계절이 바뀌어 향수 원료가 생산될 무렵이면 원료를 고르기 위해 생산지로 향한다. 이렇게 자신의 향수를 두고 "여인들의 정신세계를 감싸주고 내면의 미를 재발견하도록 안내한 역할에 만족한다"는 장 폴 겔랑의 향수 사랑은 현재진행형이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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