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쪽샘 마을'

입력 2005-02-18 11:51:30

천년 고도 경주(慶州)에 가면 누구나 찾는 곳이 대릉원이다. 바로 그 옆의 빼곡한 전통 한옥들 사이로 난 골목에 모여 앉아 있는 속칭 '쪽샘 마을'도 거의 마찬가지다. 다르다면 '낮에는 대릉원, 밤엔 쪽샘 마을'이다. 광복 뒤부터 오랫 동안 막걸리와 동동주를 파는 주촌(酒村)으로 명성이 자자했으며, 밤이 되면 관광객과 술꾼, 시인'묵객들이 몰려 그야말로 불야성(不夜城)을 이루던 곳이다. 이 때문에 한때 주당들 사이에는 '경주의 쪽샘 골목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 마을 초입에 언제나 쪽박으로 물을 떠서 마실 수 있는 '마르지 않는 샘'이 있어 그렇게 불렸다지만, 술 또한 그랬다고나 할까. 일제 강점기 때 일본 관리들을 접대하면서 날렸던 퇴기(退妓)들이 몰려들어 대폿집을 열면서 주촌을 이뤘으며, 날로 흥청거리게 됐었다. 통금이 있던 시절에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이가 적용되지 않던 경주였으므로 더욱 그랬으리라.

◇ 정부의 사적지구 조성 사업에 따라 사라지게 될 '쪽샘 마을'의 생활상을 담은 책(전 4권)이 상반기 중 선보일 모양이다. 황남동'황오동'인왕동 일대 고분 지역 주변의 이 마을 유래와 역사'문화재'속담'전설'가옥 형태'도로'음식'관혼상제 등을 총체적으로 조명하게 된다고 한다. 영남대 민족문화연구소가 1년 간의 연구를 거친 작업의 결정체가 되는 셈이다.

◇ 작업엔 경주의 문화재 관련 전문가 10여명이 함께 참여해 깊이와 현장감을 더하며, 역사를 거슬러 오르는 방대한 이야기들이 망라될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을 일대는 5세기 말에서 현재까지의 유서 깊은 역사를 지닌 곳이다. 특히 고분군 형성과 경주읍성, 남고루 축조는 물론 1970년대 초반 팔우정 해장국집 거리 조성, 그 이후의 변화들까지 1천300여 년에 걸친 모습을 담게 되기 때문이다.

◇ 시인'묵객이 아니더라도 이 마을에 대한 추억이 남다른 사람들이 적지 않으리라. 최옥난'백옥자'천매화'정매화'버드나무'감나무'깨양나무'오륙공구 등이 바로 그런 이름들일 게다. 유치환'박목월'조지훈'서정주 등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시인들이 남긴 일화들이 새삼스럽지만, 경주의 문화'예술 요람이었다는 점에서도 감회가 적지 않다. 아무튼 기록으로라도 이 마을이 되살아난다니 다행이다.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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