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의 두 여자 아이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한 아이가 달려오던 차에 치여 숨졌다.
운전자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아이들이 신호를 위반했다고 주장했고, 증인도 같은 취지의 진술을 해 법원은 신호를 위반한 사람은 아이들이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피해 아이의 가족이 보험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숨진 아이와 함께 있었던 아이가 자신은 신호를 지켰다고 거듭 말하기 시작했다.
사건을 맡은 변호사는 아이의 말 하는 태도, 표정과 내용으로 보아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민사법원이 이미 형사재판에서 확정된 사실과 상반되는 아이의 진술을 믿어주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었다.
진술의 신빙성을 높일 증거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놀이치료와 심리평가라는 정신의학적 검사방법이었다.
이는 정신과의사가 아이와 함께 놀이를 하면서 순간순간 필요한 질문을 던져 아이로 하여금 내면의 세계를 무의식적으로 진술케 하는 방법이다.
그 검사에서 의사는 아이와 단 둘이 자동차놀이를 하면서 사고 상황을 재연했고 지나가듯이 사고 당시 횡단보도 신호등이 빨간불이었는지 파란불이었는지를 물었다.
이에 아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빨간불도 파란불도 아닌 초록불'이었다는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을 했다.
검사의 전 과정은 비디오테이프에 녹화돼 증거로 제출됐으며, 아이는 법정에서 동일한 내용의 증언을 했다.
그때 아이의 나이는 7세였다.
그러자 다른 증인도 사실은 신호등을 정확히 보지 못했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마침내 법원은 아이의 진술을 신뢰해 형사재판의 결과를 뒤엎고 신호위반자는 아이가 아니라 운전자였다고 판결했다.
2년여 만에 피해 아이의 억울함이 풀린 것이다.
유아 진술은 유아의 순진성과 단순성으로 인해 신빙성이 높은 면이 있는 반면 유아의 판단력과 인지력의 부족으로 오히려 신빙성이 낮은 면도 있다.
법원이 강간치상 사건에서 사고 당시 생후 3년 3월, 증언 당시 3년 6개월인 여자 아이의 증언을 신뢰한 사례가 있는가 하면, 비슷한 사건에서 사건 당시 4세인 피해자의 증언을 믿지 않고 피고인의 무죄를 선고한 사례도 있다.
이는 유아진술의 신빙성은 단순히 나이에 의해서만 판단되는 것이 아님을 말하지만 이러한 판단을 내리기는 무척 어렵다.
그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정신의학 및 심리학적 검사기법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임규옥(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