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안고수비(眼高手卑)

입력 2005-02-17 11: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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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사람들은 무얼 먹고살아?' 대구 바깥에 사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다. 주머니 사정(경제 지표)만 보면 도무지 돈이 나올 구석이 보이지 않는 데도 입에 풀칠은 하고 있으니 묻는 말이다. 하긴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대로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수더분했던 대구 인심이 예전만 못한 것은 분명하다.

대구 경제가 날개도 없이 추락하고 있다. 기업 법인세가 주종을 이루는 1인당 국세 비중은 경북이 맨 끝이고, 대구는 바로 그 앞이다. 대구의 1인당 GRDP는 1천만 원에도 못 미치며 지난 1991년 이후 꼴찌를 달리고 있다. 곤두박질도 이력이 나면 요령이라도 생기련만 거의 자유낙하 수준이다. 뚜렷한 대안도 없다. 대구시청, 대학 및 연구소들이 내놓은 발전전략도 원론 수준에서 맴돈다. 구체적 비전이나 방법론을 제시하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하나마나한 얘기만 반복한다. 대구의 경제현안이 쉽게 풀릴 매듭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해도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는 백화점식 처방전 남발은 돌팔이 짓이고 직무유기다.

◇ 거창한 계획보다는 내실을

돌팔매가 계속되자, 대구시청은 최근 '대구의 비전과 발전전략'이란 것을 내놓았다. 10여 쪽으로 요약된 내용 중 핵심은 2대 발전전략과 5대 프로젝트다. 2대 발전전략은 '과학기술 중심도시' '문화예술 중심도시'다. 5대 프로젝트는 △대구테크노폴리스 조성 및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설립 △문화산업 클러스터 조성 △대도시형 서비스산업 육성 등이다.

'패션도시', '첨단도시', '기업하기 좋은 도시' '생활물류 중심도시' 등 혼란스러웠던 슬로건을 두 가지로 정리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공허하고 안고수비(眼高手卑)다. 내부 역량은 감안하지 않고 눈높이만 한껏 올려놓았다는 얘기다.

달성군 현풍과 유가 일대에 조성키로 한 대구테크노폴리스가 대표적 사례다. 싹을 틔우려는 단계에 초를 치는 소리지만 DGIST의 입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DGIST에 우수한 인재들이 몰려들지도 의문이다. 공공기관 유치도 불투명하다. 국내외 연구기관 유치는 더욱 오리무중이다. 지역 대학들의 연구개발 역량도 한심한 수준이다. 이런 상태에서 테크노폴리스를 조성해 R&D특구로 지정받겠단다. 포부가 크다고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가방만 크면 뭐 하는가.

구미'포항'울산'창원 등지 기업을 대상으로 법률'회계'경영상담 등 비즈니스 서비스산업 기반을 구축하고 의료'교육산업을 육성하는 한편 문화예술공연을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은 좋다. 대구의 제조업 비중은 22.6%에 불과하고 서비스산업은 무려 76.7%나 된다. 그것도 식당'여관 등 영세 서비스업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도시형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방침만 있을 뿐, 내부 역량을 결집하는 구체적 실천방안은 미흡하다.

대구를 중심으로 사통팔달 뚫린 도로 인프라는 잘만 이용하면 내륙도시 대구의 경쟁력을 뒷받침할 것이다. 하지만 대구가 중추핵심 기능을 갖춰 경북을 지원할 수 있을 때나 가능한 얘기다. 대구가 경북의 베드타운으로 전락할 경우 거꾸로 수도권이나 부산권으로 경북의 이탈을 부추길 우려가 더 높다.

상◇ 생의 길은 경제적 통합뿐

그러려면 대구와 경북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 구심력을 갖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경쟁해선 안 된다. 대구도 제조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15~20%정도 제조업 기반이 있어야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1차 밴드인 첨단핵심 부품산업을 유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제조업만 남기고 나머지는 경북에 넘겨야 한다. 대신 서비스 산업의 구조고도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통합은 쉽지 않다. 정치적 통합이 어렵다면 경제적 통합이라도 시도해야 한다. 상생의 길은 경제적 통합뿐이다. 이를 위해 지역 정계, 경제계, 학계 등을 망라한 상설 경제협의체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이와 함께 팔공산 일대 개발 등 작은 사업부터 공동사업으로 추진, 서로 양보하고 협력하는 경험을 쌓도록 해야 한다. 대구와 경북이 비틀거리는 사이 다른 지역은 저만치 앞서가 있다. 이가 시리다고? 그러면 입술을 붙이든가, 마스크라도 쓰야지, 이빨만 갈아선 안 된다.

曺 永 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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