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입력 2005-02-17 08:58:05

가까이 오라, 죽음이여

동구 밖을 당도하는 새벽 기차를 위하여

힘이 끝난 폐차처럼 누워 있는 아득한 철길 위에

새로운 각목으로 누워야 하리

거친 바람 속에서 밤이 깊었고

겨울숲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모닥불이 어둠을 둥글게 자른 뒤

원으로 깍지 낀 사람들의 등뒤에서

무수한 설화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서걱거린다

고정희 '땅의 사람들1―서시' 에서

고시인의 시는 슬프다.

거기에는 고난받은 이 땅의 서러운 민중사가 있고 우리 여성사가 있고 기독교적 고난의 의미가 스며 있다.

'가까이 오라, 죽음이여' 그는 무수한 설화를 남기며,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들을 굿을 하듯 먼저 불러모은다.

아직도 이땅은 겨울이지만 모닥불을 피우며, 새벽 기차를 위하여 낡은 철길 위에 새로운 각목으로 누울 차비를 서두르는 사람들, 그 살아남은 자의 가슴에 이는 슬픔, 새로운 각오로 일어서려 할 때 북받치는 슬픔의 힘이 시의 행간을 사정없이 흔들고 있다.

'먹물일수록 찬란한 빛의 임재, 어둠의 사람들은 행복하여라'고 고난의 역사에 힘을 실어주고 간 시인. 박정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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