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대구에 화교가 정착한 지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지난 1905년 대구지역에 최초로 화교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특히 세계 각지에서 경제권을 쥐고 있는 화교들이지만 유독 대구에서만큼은 고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생소하게 들린다.
사실, 대구에 정착한 화교들은 힘들게 살아왔다.
우리 재일교포들이 받았던 배척보다 더 심하게 화교들을 배척한 한국은 1970년대 화교들의 탈한국 붐까지 만들 정도였다.
결정적인 사건은 서울 화교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소공동 재개발건이었다.
소공동에 살았던 화교들에게 분양권을 약속해 놓고 재개발 후 지키지 않아 한국정부에 배신감을 느꼈던 것. 당시 대구를 떠난 화교들만 1천여 명이 넘었다.
미국, 대만, 호주 등으로 떠나면서 1980년대 120여 개에 달하던 대구의 화교식당이 지금은 40여 개로 줄었다.
그러나 정착 초기부터 화교들과 지역민들의 관계가 나빴던 것은 아니다.
계산성당, 제일교회, 남산교회, 화교협회, 구세군교회 등과 같이 지금도 남아있는 수려한 적벽돌 건축물들은 1920년대에 건너온 화교의 작품이었다.
그들은 종로에 군방각이란 청요릿집을 세웠고, 큰돈을 벌어 독립운동자금도 지원했다고 한다.
초기 대구시민들의 눈에 비친 그들의 이미지는 꽤 좋았다.
대구정착 100주년을 맞는 올해 화교를 보는 한국인들의 입장에 묘한 변화가 일고 있다.
6천만 화교권 경제인들의 '경제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화상대회가 오는 10월 서울에서 열리게 되면서, 한국 경제권은 벌써 투자유치를 위해 비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이러니한 일은 차이나타운이 없는 유일한 나라, 배타적인 외국인 정책으로 수많은 화교들을 쫓아내었던 한국이 30년이 채 못돼 다시 손을 내미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대구도 외국인이 살기좋은 관광도시, 투자하기 좋은 도시가 되려면 우선적으로 지난 100년간 화교의 생존권과 정착권을 보장해주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부터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거리문화시민연대 사무국장 권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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