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엄마손도 약손…"

입력 2005-02-16 10: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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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희(46·여·포항 북구 우현동)씨는 불편한 손으로 연신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팔을 주무르고 있었다.

이씨는 손가락 마디마디가 채 생기다 만 지체장애 2급. 왼손은 검지와 새끼손가락만 쓸 수 있고, 오른손은 엄지와 새끼손가락만 쓸 수 있다.

손을 좀 오래 兀?싶으면 곧잘 저려오고 아프지만 가톨릭병원에서 투병 중인 딸 주영(23)씨에게만은 그 손을 내놓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부끄러워 늘 감추고 있던 손인데 내 딸만은 그 손이 아주 따뜻해서 좋다고 그러대요. '엄마손은 약손'이라며 어찌나 조르는지…둥글게 배를 쓰다듬어주면 주영이는 어느새 잠이 들곤 하지요."

주영씨는 급성 궤사성 췌장염으로 지난해 입원했지만 그 동안 합병증 때문에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장이 막혀 장폐색증 수술을 했고 췌장 주위에 고름이 생겨 등쪽에 튜브를 꼽아 빼내고 있다.

거기다 지난달에는 장기들이 갑자기 헐기 시작하더니 조직에서 나온 물이 배에 고여 산만큼 불룩해졌다.

늘 배에 엄마의 손길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했다.

"딸애의 배가 복수가 차올라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는데 그땐 정말 도저히 가망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숨이 가빠 말도 제대로 못하는 딸애를 지켜 보는 엄마의 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밤마다 기도했어요. 제발 살려달라고…."

병원 한쪽에서 슬픈 통곡소리가 흘러나왔다.

10분쯤 지나자 유족들의 서러움이 휩싸인 관 하나가 우리 앞을 지나갔다

그러자 이씨는 갑자기 머리를 양 무릎에 파묻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2년 전 애 아빠가 폐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떴지요. 하도 기침을 하기에 감기약을 사줬었는데 그게 다 암세포 때문이었어요. 큰 병원을 찾아 조직검사를 한 다음날 그이는 왜 죽는지도 모르고 우릴 떠났어요."

공사현장에서 철골구조 막일로 하루하루 생활비를 벌어오던 부지런하고 든든했던 남편이 갑자기 너무 그리웠던 것이다.

혼인신고만 하고 결혼식도 올리지 못해 늘 미안해했다는 남편은 늘 부자되면 결혼식부터 올리자고 그랬던 것이다.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요. 말도 없이 세상을 뜬 아빠한테도 속았는데 이젠 딸애한테까지 속을 수 없지요. 속은 것이 분해서라도 애 살릴 거예요."

300만 원의 치료비를 냈지만 아직 900만 원을 더 내야한다.

지난해 11월쯤 의료보호 1종이 됐지만 주영씨가 먹는 약은 보험 혜택이 없어 약값도 엄청 많이 든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매달 동사무소에서 받는 정부지원금은 고작 24만 원 정도. 집은 비어있는 채로 매달 20만 원씩 꼬박꼬박 빚으로 더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씨는 혹시 병원에서 퇴원을 권할까봐 두렵다고 했다.

갚을 돈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간병해주는 아주머니, 담당 의사선생님, 간호사분들이 정말 잘 대해주세요. 은혜를 갚으려면 밀린 병원비를 어떻게든 마련해야하는데 이 손을 받아줄 곳도 없고…."

이씨는 부끄러운지 자꾸 두 손을 허벅지 밑으로 끼워 넣었다.

딸을 살린 '약손'인데도 살아가기엔 너무 못난 손이라고 또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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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설명:이숙희씨가 불편한 손으로 췌장염 등으로 투병 중인 딸 주영씨의 손을 잡고 있다. 이채근기자 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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