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참사로 아내(당시 34세)를 하늘나라로 보낸 김모(37)씨. 그는 아이들만 아니면 벌써 대구를 떠났을 것이라고 넋두리했다. "골목길에서 수군대는 동네 사람들만 봐도 내 얘기를 하는 것 같고 '이제는 잊어야지' 하는 위로의 말도 서럽습니다. " 엄마 얘기를 일부러 꺼내지 않는 아이들이 너무 안쓰럽다는 그는 아내가 선물한 낡은 휴대전화 장식고리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대학생 딸(당시 20세)을 잃은 박영로(52·청도군 금천면)씨. 그는 "얼마전 딸 아이 생일날 납골당에 갔지만 이제는 눈물도 더 안나더라"며 "어쩌다 딸의 졸업앨범을 펴고는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2003년 2월18일 오전 9시53분, 뭔가 한가지만 어긋났더라도 죽지 않았을텐데…."
대구지하철 참사로 소중한 부모, 자녀를 잃은 유가족들은 참사 2주기를 앞두고 당시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한결같이 말했다.
선배 졸업식에 가려다 하늘나라로 간 장정경(당시 20세·여·계명대 성악과)씨의 아버지 장수한(47)씨는 "방학이라 집에서 조금만 더 늦게 나갔더라면, 아니면 택시나 버스를 탔더라도…"라며 아직도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부인 박미영(당시 39세)씨와 딸 혜진(당시 7세)양을 잃어버린 전재영(45·경북 김천시)씨는 "딸이 말이 부정확해 마지막 교정치료를 받기 위해 영대병원으로 가던 길에 끔직한 일을 당했다"며 "뜨거운 화재현장에서 꼭 껴안은 채 마지막 숨을 거둔 아내와 딸의 모습을 생각하면 하늘이 원망스럽고 가슴이 미어진다"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입양을 통해 자식을 잃은 아픔을 달래는 부모도 있고 아직도 주변 사람들에게 참사 사실을 알리지 않는 유가족도 있다.
현재 포항에 살고 있는 김창윤(50)·정경숙(49)씨 부부는 참사 당시 떠나보낸 남매 향진(당시 22세·계명대 공예디지인과)이와 철환(당시 20세·중앙대 건축과)이를 잊지못해 딸(6)을 입양해 키우고 있다. 김씨 부부는 "이렇게라도 한없는 아픔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황순오(37)씨는 어머니 김옥수(당시 57세)씨를 하늘로 보낸 뒤 2년 가까이 외할머니(82)에게 알리지 않고 있다. 노환으로 병들어 있는 외할머니가 충격을 받을까 싶어서다.
유가족들은 끔찍했던 당시의 일이 잊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유가족들의 상담·치료를 하고 있는 '대구가족치료센터' 이성희 교수는 "지난 1주기때 유가족들의 상실감, 우울증, 불안정도를 측정했더니 최고 수치 4에 가까운 3.05가 나왔다"며 "특히 참사가 잊혀가는데 대한 심리적 압박감이 크다"고 말했다.
부상자 가족대책위 이동우 위원장은 "최근 목소리가 갑갑하다거나 기침, 천식,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151명에 달하는 부상자중에는 최근 2명이 숨졌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사진:대구지하철 방화사건 희생자 86명의 영정이 안치된 희생자 대책위 사무실. 고 변도연(당시 34세)씨의 어머니 강정순(58, 대구시 동구 신기동)씨는 "2년이 지난 요즘도 당시 출근길 복장을 한 아들이 꿈에 나타나 어머니를 찾아 헤맨다"고 울먹였다. 이상철기자 find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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