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도 끝이 났다.
명절 대목에 그런 대로 반짝 경기로 재미를 본 분들은 과일이나 민속주, 유과, 해산물 등을 생산해 내고 선물 세트를 만들어 판 농어민과 유통업체 그리고 열심히 발품을 해댄 택배업계일 것 같다.
그들 모두 나름대로 속이 찬 열매를 수확하느라 땀을 흘렸고 거친 파도를 타며 그물질을 했고 재바른 손재간으로 먹을 거리 선물을 만들어내면서 애쓴 만큼의 당연한 소득을 얻어갔다. 그런데 모두가 다들 그렇게 합당하게 대목벌이를 한 설연휴중에도 부실한 서비스에다 허술한 밑천(장비)으로 대목경기만은 톡톡히 챙긴 양반들이 있다.
바로 KTX 고속철이다. 개통 직후부터 '고속철이 뭐 이래'소리듣던 KTX가 연휴 끝날이었던 지난 10일에는 터널속에 80분 동안이나 승객을 가둬두는 어처구니 없는 부실운행을 했다.
사고도 사고지만 원인규명을 놓고도 '전기 신호장애 같은데 제대로 알려면 이틀쯤 걸려야 될 것 같다'는 한심한 수준이다. 솔직히 KTX에 대한 평가는 이번 설연휴 사고가 아니더라도 개통 당시부터 빠른 것 빼고는 무궁화 급보다도 못한 구석이 있다고 할 만큼 기대 이하였다는 게 다수 승객들의 평가였었다.
KTX의 모델은 프랑스의 TGV(떼제베)다.
기술 이전이니 뭐니 하며 쏟아부은 건설비용만도 조(兆)단위 예산이었다.
그런데 막상 요즘 프랑스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오리지널 TGV와 KTX는 완전히 딴판이다. 한마디로 우리 KTX는 구닥다리 같은 구식 모델을 얻어오면서 천문학적인 돈만 퍼부은 격이다. 필자도 프랑스 TGV가 KTX처럼 돼 있으려니 했었다. 비싼 돈 내고 기술을 이전했다니까 그럴 수밖에. 그러다 두달 전 열차로만 1만㎞ 이상을 취재다니는 기회에 파리와 벨기에 브뤼셀 스위스쪽을 건너가며 여러 모델의 TGV를 타 보고서야 KTX가 '짝퉁고속철'임을 알았다.
코 큰 프랑스 사람들이 타고다니는 '원조TGV'를 타고 가면서 KTX와 다른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기에 노트에 일부러 적어왔었다. 대충 중요한 것만 11가지였다. 우선 TGV는 좌석 위 선반이 이중으로 돼 있다.
상단은 큰 가방을 얹을 수 있게 받침대를 넓게 만들고 바로 밑에는 조그만 짐을 얹을 수 있게 좁은 칸을 만들었다.
각도도 경사를 둬서 안정감을 주고 있다. 달랑 한칸짜리 선반에 각도도 수평으로만 해놓은 KTX보다 훨씬 유용하다.
의자 손잡이 밑에도 버튼으로 좌석을 젖히거나 앞뒤로 조절할 수 있게 해뒀다. 엉덩이로 밀고 당겨야 의자 바닥만 밀리는 KTX와는 편의성이 비교가 안된다. 조명시스템도 눈 바로 위에 밤낮으로 계속 불을 켠채 끌수도 없는 수면방해형 KTX 조명과는 달리 임의로 끌 수 있고 탁자 위에는 간접조명식의 독서등이 따로 있었다.
의자 머리 받침대에는 높낮이가 조절되는 특수 베개도 달려 있다. KTX 엔 물론 없다.
여행중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고 업무를 볼 수 있게 좌석옆에는 230V 콘센트도 달려 있다. 열차 무게를 감안하면서도 꼭 필요한 첨단편의시설은 최대한 갖추고 있다.
천장에다 소리도 안들리는 먹통 TV모니터를 달아두고 광고수입이나 챙기는 KTX식의 이상한 서비스는 찾아볼 수가 없다.
어제만 해도 상행선 KTX TV에는 가수들이 입만 벙긋거리며 소리도 안나는 가요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들리지도 않는 TV 왜 켜냐'는 물음에 승무원 아가씨 대답이 가관이었다.
"글쎄 말입니다. 위에 얘기해도 빨리 시정이 안되네요."
역 안내방송의 차임벨 소리도 파리역에는 화음이 조화된 소리를 내보낸다. 마치 조용한 음악을 듣는 것 같은데도 주의집중은 더 잘된다. 귀청이 따가운 KTX 측의 역안내 방송'차임벨은 왜 파리역의 음악성을 따오지 못했을까. KTX 비하가 아니다. 조 단위의 예산을 들여 최신의 고속철을 건설하겠다면 TGV의 장점을 최대한 다 따오고 더 나은 우리 것을 보태서 개량해 내는 능력과 노력이 있었어야 하지 않느냐는 아쉬움을 말하는 것이다.
TGV를 제대로 안 닮은 짝퉁 KTX 그리고 스님 한분의 단식투쟁으로 고속철 터널공사가 수천억 원의 국민 세금을 소모해 가며 오락가락하는 고속철을 보면서 참 우리 국민들은 맘씨 한번 착하다는 생각을 새삼 해보게 되는 것이다.
내집 앞의 환경시설물은 결사반대고 내 봉급 몇푼 축나는 일엔 붉은띠 매고 야단치면서도 수천억 수조원의 국가예산이 허투루 쓰여지는데는 어쩜 그렇게도 너그러운지.
그러나 이제 새봄부터는 비효율적 예산 소모나 공기업의 불량서비스쯤 곧잘 참고 견뎌주는 '착한 백성' 노릇이 과연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지켜주는 것인지도 곰곰 생각해 보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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