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향토인들] (7)문학계

입력 2005-02-12 13:2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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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시원(始原)을 찾아 떠나는 길, 그 종착역은 고향이다. 귀소 본능이 뼛속 깊이 사무쳐, 달아나면 달아날수록 마음은 고향 언저리에 있다. 이들의 고통스런 글쓰기 이면에는 이런 '질긴' 고향의 맥박이 살?있다. 중앙 문단(文壇)에 활약하는 대구'경북 출신 작가는 부지기수다. 누구를 빼고, 더하고를 떠나 모두들 제 역량을 발휘하며 우리 문단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먼저 서울에서 활동하는 대구'경북 출신 문인들의 친목단체인'보리회'가 있다. 소설가 정소성(62'봉화'단국대 교수'보리회 회장)'이문열(58'영양)'김원일(64'경남 김해)'김주영(67'청송)'홍상화(65'대구)'김준성(85'대구'전 경제부총리)'김정현(48'영주''아버지'를 쓴 작가), 시인으로는 정호승(55'대구), 평론가로는 오양호(63'칠곡'인천대)'김화영(64'영주'고려대) 교수 등이 주요 멤버다.

소설가 이문열은 1954년 서울 청운동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고향은 엄연히 영양 석보다. 나이 들어 영천, 안동, 밀양, 대구, 서울 등지를 떠돌며 귀향과 실향을 반복했을 때도 고향 영양은 변함없는 정신적 지주였다. 그는 스스로를 일컬어 "진정한 고향을 가진 마지막 세대"라고 말했다.

한말(韓末)보부상의 삶과 풍속사를 재현한 소설 '객주'를 쓴 김주영의 고향은 청송이다. 당연히 객주의 공간배경도 청송이다. 그는 "청송 장터에서 태어나 장꾼들의 삶을 보고 자랐다"고 말했다. 시골장터와 농촌 원두막, 달밤, 몽당치마의 어린 누이, 대신동 피난살이, 양코배기 등 그가 쓴 작품의 소재들은 대부분 1950년대 대구'경북의 팍팍한 삶이 묻어있다.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작품을 쓰는 소설가 김원일 역시 "문학의 원천적 뿌리는 10대의 기억"라고 단언한다. 그는 "고교 시절 대구 변두리의 황량한 들길과 어둠을 가르고 신문을 돌릴 때, 그 겨울밤 추위 속에 보던 별들이 왜 그렇게 서럽던지…"라고 회상했다. 그는 지난 2002년 재출간한 '마당 깊은 집'에서 대구 피난촌 단칸 셋방의 삶을 떠올리며 "가난은 절망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희망으로 가는 길이었다"고 썼다.

인기 드라마 '아들과 딸''마당 깊은 집'을 쓴 방송작가 박진숙(58'대구)도 보리회 멤버다. 그는 2년 전 '마당깊은 집'의 무대인 대구시 장관동 약전골목을 직접 답사하고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을 찾아가는 발걸음'이라는 단행본을 지인들과 함께 내놓기도 했다.

정지용기념사업회 회장이자 한국말글학회 회장을 역임한 문학평론가 오양호 인천대 교수는 보리회가 모은 기금 3천만 원으로 대구 달성군 인근에 창작공간을 꾸미는 게 소박한 꿈이다. 고교 동기인 조해녕 대구시장에게도 부탁한 터지만 턱없이 부족한 돈을 마련하기가 버겁다. 오 교수는 "고향에 작은 집을 지어 지역 고향문인들과 서로 어울려 문학을 고민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보리회 외에도 평단에서 무시 못 할 작가가 즐비하다. '성탄제'로 유명한 시인 김종길(81'안동)과 '수난이대''흰종이 수염'을 쓴 하근찬(74'영천)은 우리 문단의 대표적인 원로로 꼽힌다. 두 사람의 작품은 모두 중'고교 교과서에 실릴 만큼 현대문학의 '전범'으로 통하며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나란히 추서 받았다.

현재 예술원 부회장인 김종길 선생은 지난해 8월 시집 '해가 많이 짧아졌다'를 펴낼 만큼 여전히 왕성한 창작열을 보이고 있으며 지난 2일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그의 작품인 '설날 아침에(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를 인용, 눈길을 끌었었다.

문화관광부 이창동(51) 전 장관은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소지''녹천에는 똥이 많다' 등의 문제작을 쓴 소설가로 대구산(産)이다. '그리스'로마 신화' 시리즈를 써 신화 이야기꾼으로 알려진 이윤기(58)는 군위 우보출신이다. 고교 검정고시 및 신학대 중퇴가 최종학력인 이씨가 경북중에서 사서로 일하며 도서실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은 일화는 유명하다. 이씨는 "당시 책이건 음악이건 이거다 싶으면 감자 줄기 캐듯 한없이 파고들었다"고 회상했다.

중견 여류작가로 시인 김남조(79'대구'숙명여대 명예교수)와 시인 유안진(65'안동'서울대 교수), '숲속의 방'을 쓴 소설가 강석경(55'대구) 등이 있다. 또 '고삐' '들' 등을 쓰며 우리 문단에 페미니즘 소설을 개척한 윤정모(60)는 경주 월성출신이다. 네 사람은 모더니즘, 인본주의에서 민족주의 성격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작품세계를 선보이며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이밖에도 문지(문학과 지성)사의 대표이자 '수련'을 쓴 시인 채호기(대구), 80'90년대 문단의 '이단아'로 꼽힌 시인 박남철(포항), 시인이자 소설가인 박덕규(안동'협성대 교수)'이승하(김천'중앙대 교수)가 뒤를 잇고 있다. 특히 박남철(74학번)과 박덕규(78학번)는 황순원의 맥을 잇는 '경희사단(경희대 국문과 출신)'의 주춧돌로 이미 80년대초 공동시집('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을 내놓을 정도로 주목을 받았었다. 경희사단의 동향 선배로는 정호승(68학번)'박진숙(67학번)이 있다.

또 시, 산문과 소설을 종횡무진하며 최고의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는 성석제(상주), 경북대 국문과 유기룡 명예교수의 아들로 소?'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영원한 제국'으로 알려진 이인화(본명 유철균'대구), 상주 출신으로 '또다른 날의 시작'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신인 소설가 차현숙 등이 서울에서 젊은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평론가로는 나란히 경북고'서울대 73학번 동기동창인 홍정선(예천'인하대 교수)'윤지관(대구'덕성여대 교수)'이동하(대구'서울시립대 교수)가 평단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세 사람은 공교롭게도 학부시절 국문(홍)'영문(윤)'법학(이)과로 공부한 분야는 달랐지만 이후 문단에서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이들의 문학적 이념지향은 서로 달라 홍정선이 주로 문지계열인 '문학과 사회'에서 주로 글을 썼다면 윤지관은 '실천문학'과 '창작과 비평'에서, 이동하는 이념적으로 중간 지대라고 할 수 있는 '작가세계'에 터를 잡고 평론활동을 했다.

평론가로 경북고 출신이 포진하고 있다면, 대륜고 출신은 시인과 소설가로 중앙 문단에 자리를 잡고 있다. 위로는 국문학자이자 평론가인 이재선(69'대구) 서강대 국문과 명예교수가 있고, '서울의 예수'를 쓴 시인 정호승,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의 시인 하종오(51'의성), 90년대초 '경마장 가는 길'을 써 센세이션을 가져온 소설가 하일지(동덕여대 교수), '새를 기다리며'의 시인 김수복(단국대 교수), 시인 박건수(대구)'김재진(대구)'박덕규 등이 있다.

정호승은 "내 시의 밑거름은 내 고향 대구 신천동에서 살던 기억, 겨울 밤 화장실에서 똥 누던 소년이 빛나는 별과 보름달을 본 기억"이라며 고향을 잊지 않았다.

김수복은 "내 시의 탯줄이 묻혀있고 시의 바람을 가슴 속에 일게 했던 곳은 대구 수성벌판, 대륜고 문예반 시절 이었다"며 "당시 고교 동기들로는 하종오, 장옥관, 김재진 시인 등이 있었고 2년 아래에는 소설가 하일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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