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미학/미와 교코·진중권 지음/세종서적
포르노그라피의 자극적인 영상이 넘쳐나는 21세기에 에로티시즘 미술작품이 여전히 유효할까?
'서양미술에 나타난 에로티시즘-성의 미학'은 외설과 예술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예술에 암시된 '에로틱'을 찾는 데에 급급한 수준을 넘어 에로틱을 암시하는 '예술'을 보자고 제안한다. 분명한 사실은 금지된 것, 감추어진 것이 있어야 욕망이 생기고 금지가 풀리면 그 욕망도 강도를 잃는다는 것이다. 감추어진 성, 상징하는 성, 한번쯤 뜸을 들이고 음미할 줄 아는 여유, 여기에 에로틱 예술이 포르노그라피보다 훨씬 야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이것이 에로틱 예술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기도 하다.
저자가 살펴본 에로틱 예술은 대부분 남성들의 눈으로 그려진다. 남성이 기득권을 쥔 사회에서 그들에게 성적 희열을 주는 여성들의 신체를 그린 그림이 대부분이다. 그나마도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실질적인 묘사를 거부당하고 신화나 성경의 외피를 써야 했다.
하지만 성(性)과 사랑을 주제에 관한 무궁무진한 주제가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다. 에로티시즘은 남녀의 성적 욕구에서 시작해 관음증, 근친상간, 동성애, 양성구유, 수간, 강간, 매매춘 등 비상식적인 분야로 확장된다. 그리스 시대에는 동성애란 단지 성인남성이 소년에게 지혜와 경험을 전수해주는 정당한 사회적 관계였으며 18세기 이후부터 비로소 신화와 성경의 껍데기를 벗고 정면으로 현실의 여성의 에로틱을 다룬 작품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단편적인 변화를 통해서도 성에 관한 도덕과 관념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양미술사에서 애용되던 성서 및 신화 속 이야기로는 소돔성에서 탈출한 롯과 그의 딸들이 대를 잇기 위해 근친상간을 자행한다는 이야기, 사냥을 하던 도중 길을 잃고 헤매던 악티온이 디아나와 님프들의 목욕장면을 목격하면서 사슴으로 변하는 이야기, 팜므파탈의 이야기 등은 작가마다 다른 시각으로 제각각 다른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신화나 성경 속 이야기들은 작가들의 상상력이 덧붙여져 전혀 다른 형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들 그림은 다양한 은유와 상징으로 보는 재미를 더한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그림 속 주인공의 내밀한 시선, 그림 배경 속에 숨겨진 성적 상징, 조연들의 몸짓 등은 볼거리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예를 들자면 프라고나르의 '강아지와 함께 있는 소녀'(1775년)는 소녀가 강아지와 놀고 있는 천진난만한 장면을 그린 것 같지만 블라우스가 슬쩍 풀어진 소녀의 젖가슴, 푸들의 위치, 침대 옆에 벗어놓은 옷가지들, 이불의 위치 등을 통해 작가는 그림에서 에로틱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성담론을 솔직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듯 설명하고 있다. 이는 저자가 에로티시즘을 미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작가들의 내면세계를 날카로우면서도 겸허한 시선으로 소화해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책은 진중권씨와 그의 일본인 부인 미와 교코가 함께 썼다. 책의 구상은 진중권씨가, 집필은 독일 베를린에서 미와 교코가 일어로 써보낸 원고를 진씨가 번역했다는 점에서 남성과 여성의 시각이 공히 녹아있다고 볼 수 있다. 전작 '춤추는 죽음 1'2'은 진씨가 집필을, 미와 교코가 보조를 맡았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전작 '춤추는 죽음'에 이어 '성의 미학'을 집필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삶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자연에서 삶을 퍼올리는 신 '에로스'. 인간 존재의 처음과 끝을 관장하는 이 두 신은 서로 밀접히 연결돼 있다. 때문에 '죽음의 미학'으로 시작된 연구는 언젠가 '성의 미학'으로 환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사진: 구스타프 클림트 1900년대 초기작 '다나에'.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오르가슴의 절정의 순간을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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