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데스크-가족을 다시 생각한다

입력 2005-02-11 10:03:48

얼마 전 충북 괴산군이 4만 명 분의 밥을 한꺼번에 지을 수 있는 세계 최대의 '가마솥'을 제작한다고 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솥밥 문화'를 통해 분열의 시대에 화합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가마솥은 요즘 식당 등을 통해서나 겨우 들어볼 수 있는 이름이다.

그러나 한때 가마솥은 우리네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었고 가족을 이어주는 매개체였다.

명절이나 잔치 준비도 대개 가마솥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밥은 물론 떡국을 끓이거나 돼지를 삶기도 했다.

또 솥뚜껑은 엎어 놓으면 훌륭한 프라이팬이 돼 전(煎)을 지지고 구워냈다.

모든 음식준비가 끝나면 가마솥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물을 데워 묵은 때를 벗기는 목욕탕이 됐다.

그러나 이 모두가 40대 이상에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급속한 현대화와 함께 전통적 대가족 제도가 무너지면서 가마솥의 필요성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이젠 '호랑이 담배 피울 적 이야기'로나 치부될 정도가 돼 버렸다.

가마솥은 시골집 부엌에서조차 밀려나 주변에서 쉽사리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이다.

가마솥이 사라진 지금 이웃 간의 나눔의 정은 고사하고 가족 간의 따뜻한 사랑과 형제애마저 멀어지고 있다.

이번 설에도 많은 이들이 어김없이 고향을 찾았다.

고향의 부모님과 친척들 그리고 어릴 적 동네 친구들을 만나 얘기꽃을 피우고 못다한 정을 나누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핵가족 생활을 하다가 명절 때면 갑자기 '공동가족'으로 바뀌면서 신구세대 간의 갈등도 만만찮았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명절되면 죽고싶네. 일주일만 죽고싶네. 이십년을 이짓했네 사십년은 더남았네" 라는 '맏며느리 타령'이 조회(照會) 수가 폭증할 정도로 주부들의 명절 뒤치다꺼리가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장보기, 요리, 설거지, 청소까지 남녀가 분담하는 집안이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는 제사까지 형제 간에 분담해 지내기도 한다.

우리네 사회관습도 서서히 시대에 맞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잇따른 경기 불황과 도덕성의 끝 모를 추락으로 가족이란 울타리가 무너지고 있다.

물질만능주의 풍조가 사회의 근간이랄 수 있는 '가족 해체'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대법원 판결로 폐지된 호주제의 대안으로 떠오른 '1인 1적제'도 일각에서 가족 해체를 가속화시키지나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이래저래 전통적인 사회의 구심점이 됐던 '가족'이 위기에 몰려 있는 것이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급증하는 이혼율, 빈발하는 가정폭력 등 급격한 '가족해체' 현상은 오히려 가족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지난 2002년 영화 '집으로'의 흥행은 우리가 한동안 잊고 지냈던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형제애를 물씬 느끼게 해 준 '태극기 휘날리며'와 '가족' 등은 가족에 대한 우리네 향수를 자극했다.

힘겹고 고달픈 세상살이를 가족에게서 위로받고 싶었고 그것이 우리네 가슴속 깊숙이 눌려있던 가족 의식을 일깨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개인주의가 팽배할수록 가족의 가치는 역설적으로 더 중요해진다.

인간의 귀소본능에 따른 정서적인 안정을 가족에게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은 우리네 세상살이가 어려움 속으로 내몰릴 때마다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었고 희망의 끈 역할을 해 온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더라도 가족만은 변할 수 없다.

휴대전화와 문자메시지가 설날 인사를 대신하는 세태가 됐지만 가족 간의 따사로운 정이 가마솥에서 긁어낸 구수한 누룽지 맛의 기억처럼 더욱 그립다.

그래서 설 끝 귀향길의 잔설(殘雪)이 남아있는 동구 밖 솔밭 길과 전송 나온 어머니의 바람에 날리는 흰 머리칼이 아직도 눈에 삼삼한가 보다.홍석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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