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충은 '소나무 에이즈'로 불린다.
소나무 재선충이 한국에 상륙한 이후 경상남도의 한 산림 공무원에 의해 재선충은 '소나무 에이즈'라는 절망적인 천형으로 명명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에게 소나무는 절개와 역경 극복의 상징이다.
그런 소나무가 재선충에 걸렸다고 해서 이 병충해를 성적 문란에 대한 자연의 보복을 의미하는 에이즈에 비유하는 것은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다.
소나무 재선충은 서방과의 무역교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1905년 일본에 유입됐다.
한국의 경우 1988년 부산의 한 동물원이 일본 원숭이를 수입하면서 들여온 소나무 우리를 통해 상륙하게 됐다.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것을 제외하면 특정 종이 다른 종을 멸절시킨 전례는 없다.
자연의 균형과 조화를 생각하면 소나무 역시 재선충의 도전으로부터 살아남을 것이다.
100년 정도가 지나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소나무들이 재선충의 위협으로부터 생존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재선충으로부터 소나무 숲을 보호해야 할지, 아니면 자연 선택에 맡겨야 할지를 우리에게 주문하고 있다.
소나무는 한국인을 가장 많이 닮은 나무다.
한국인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소나무와 함께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을 매다는 나무가 소나무이며, 죽어서도 한국인은 소나무 관에 묻혀 자연으로 돌아간다.
한국의 땅 이름 중에서 소나무 송(松)자가 첫 음절에 들어가는 마을 만 619곳에 이른다고 한다.
소나무가 멸절된다면 '남산 위에 저 소나무...'로 시작되는 애국가 2절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우리는 소나무를 자연 선택에만 맡길 수 없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의 사례에서 소나무 재선충의 참담한 피해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속에서 희망을 엿보았다.
일본의 소나무 숲이 절멸 위기에 처하고, 중국이 황산 주변에 재선충 격리대를 만들었다는 것을 우리는 반면 교사로 삼을 수 있다.
일본과 중국, 대만 등 아시아 나라들의 실패 사례를 통해 우리는 한국의 소나무 생태계를 살릴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경북대 임학과 홍성천 교수는 재선충은 결코 소나무 에이즈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굳이 비유하자면 소나무 암에 가깝다고 했다.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대책을 세우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병해충이라는 것. 홍 교수는 "한국의 소나무는 현재 비만증에 걸려 면역력이 떨어진 한국인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고 진단했다.
홍 교수는 "소나무 재선충을 막기 위해 약제 살포나 벌목, 훈증 등에만 의존하면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 경고했다.
성과 제일주의인 경직된 행정의식으로는 소나무 재선충을 막을 수 없다고 그는 보았다.
소나무 역시 사람의 몸과 비슷하다.
건강한 소나무는 솔수염 하늘소가 알을 낳지 못한다.
간벌 즉 건강하지 못한 소나무 솎아내기와 숲가꾸기를 통해 소나무를 튼튼히 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고 홍 교수는 지적한다.
조기 예찰과 방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1997년 전남 구례군 지리산 화엄사의 한 암자에 소나무 재선충이 발생했다.
암자 수리를 위해 들여놓은 소나무가 재선충에 감염된 것이어서 17그루의 소나무가 재선충에 감염돼 말라 죽었다.
다행히 이 암자의 스님이 일찍 신고해 긴급 방역 작업을 벌인 결과 재선충의 확산은 막을 수 있었다.
만일 이 때 조기 예찰과 긴급 방제가 없었다면 지리산의 소나무 숲은 상상하기 힘든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소나무 재선충의 확산을 막기 위해 현재까지 동원되고 있는 각종 대책은 1970년대 일본에서 적용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재선충과의 전쟁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조기에 발견하고 대책을 세우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가장 효과가 크고 비용도 싼 방법은 항공 방제다.
일본의 경우 인가로부터 200m 이내에는 항공방제가 금지돼 있다.
결과적으로 인가 200m 안의 소나무 산림은 거의 다 죽고 말았다.
재선충은 인가 200m 안 소나무를 거점으로 해서 다시 확산되었다.
항공방제에는 생태계 부작용이 따라다니고 있어 전면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고충이 따른다.
국립 산림과학원 남부산림연구소 문일성 박사는 "국내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경남지역의 경우 초기에 확산 저지에 성공했으나 환경단체의 반발 때문에 항공 방제를 못한 나머지, 돌이킬 수 없는 재선충 피해를 입었다"고 진단했다.
일본 임야청 산림보전대책실 코이도 타카시 계장은 "복원 보다는 철저한 예방이 더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소나무 재선충의 확산을 막을 획기적인 방안이 현재로서는 없는 만큼 확산 속도를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재선충 피해의 심각성을 전 국민들이 인식하고 정부도 국가적 위기 차원에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일본처럼 소나무 산림이 대부분 피해를 입는 상황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코이도 계장은 충고했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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