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낙화

입력 2005-02-03 16: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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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처럼 향기로운 시(詩)를 남기고 시인은 낙화(落花)했다. 지난 연말 김춘수 시인이 하늘꽃밭으로 가시더니 2일엔 이형기 시인이 길을 떠나셨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중략)'. 저 아름답고도 가슴 저릿하게 하는 시 '낙화'는 떨어지는 꽃을 통해 사라짐에 대한 존재론적 미학의 정점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해 우리나라 시인들의 최고 애송시로 뽑힌 김춘수 시인의 '꽃' 만큼이나 대중들의 애송시로 아낌받고 있다.

▲덧없는 인생, 권력과 영화(榮華)의 무상함 등을 표현할 때 '낙화'란 단어가 애용된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이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강원도에 숨어지낼 때 지은 시 '낙화' 역시 꽃을 통해 삶의 비애를 드러낸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중략)/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두어해 전,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수감될 때 '꽃이 진다고 해서 바람을 탓하지 않겠다."고 하여 한창 세간에 회자되기도 했다.

▲꽃은 언젠가 떨어진다. 그것이 꽃의 숙명이며, 예술의 대상으로서 사랑받는 이유다. 이형기 시인은 격정의 시기를 지난 꽃잎의 떨어짐을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으로, 그 순간을 가야 할 때로 보았다. 욕심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유리알 처럼 투명한 '비움'의 자세를 보여준다.

▲지난 달 31일 영국 BBC 방송 이반 노블(37) 기자의 떠남도 전세계 네티즌들에게 추모의 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02년 뇌암에 걸린뒤 자신의 블로그에 투병과정에서 겪는 아픔과 약함, 일상의 상념들을 담은 진솔한 글을 블로그에 올려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인내,감사의 마음을 일깨워 주었다. 죽기 이틀 전 올린 마지막 글에서도 "비록 지금 내가 떠나야 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걸(암을 이기고 살아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해냈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늘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삶의 자세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스스로 볼 수 없는 뒷모습, 그 모습이 아름다울 수록 많은 감동이 발자국처럼 남겨진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가 진정 아름다운 사회이며, 복된 사회일 것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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