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KAL기 폭파사건' 개요·쟁점

입력 2005-02-03 13:44:12

승객과 승무원 115명을 태우고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KAL) 858기가 1987년 11월 29일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정부는 북한의 지령을 받고 바그다드에서 탑승한 특수공작원 김현희와 김승일이 기내에 시한장치가 설치된 '라디오 폭탄'을 두고 아부다비에서 내렸다는 내용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아부다비에서 바레인으로 도주한 김승일은 바레인 공항에서 체포 직전 독약이 든 앰풀을 깨물로 자살했으며 김현희는 체포돼 그 해 12월15일 국내로 압송됐다.

안기부의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된지 한 달 만인 88년 1월 중순 김현희는 텔레비전에 나타나 "북한의 지령을 받고 88올림픽을 방해하고 남한내 계급투쟁을 촉발할 목적으로 KAL 858기를 폭파했다"고 주장했다.

사건 발생 3년 만인 90년 3월 27일 대법원은 김현희에게 사형을 선고했지만 거의 보름만에 "사건이 날조됐다는 사실을 반박할 유일한 생존자인 만큼 살려두는 것이 국익을 위해 유익하다"는 이유로 김현희는 특별 사면된다.

일부 의혹에도 불구, 유가족들은 처음에는 정부의 발표를 신뢰한 채 858기에 탑승했던 가족들의 사망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보상에 합의했다.

그러나 KAL 858기 사건은 전 감사원 직원이었던 현준희씨가 모 잡지에 '대한항공 폭파사건의 12가지 의혹'이란 글을 기고하면서 진상규명 요구에 본격적인 불을 지폈다.

그는 사고기 잔해에서 화약 잔재 등 폭발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국가정보원이 관련 증거를 400여 점이나 보관하고 있으면서도 사고기 잔해는 행방조차 묘연하다며 정부 발표에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유가족들도 "유품 하나, 시신 한 구도 발견되지 않은 항공기 사고는 역사상 단 한 건도 없었고 모든 수사결과는 김현희의 자백에 의해 이뤄졌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함께 여객기 폭발지점과 잔해발견 지점이 200㎞ 이상 떨어져 있고, 김현희가 어릴 적 북한에서 찍었다고 공개한 사진에 나온 중학생의 귀 모양이 김씨의 실제 귀 모양과 차이가 있는 점 등도 의혹의 대상이다.

그러나 당시 수사진은 "김현희의 진술로 일본어 교사였던 일본인 이은혜 납치사건이 확인됐고 북일 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납북자 문제도 불거지게 됐다.

사건 조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조작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