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사건 연작소설집 '푸른 혼' 낸 김원일씨

입력 2005-02-03 11:42:55

"진실과 인권옹호 현주소 묻고싶어"

작가 김원일(63)씨가 과거사 규명 문제로 주목받고 있는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소재로 삼은 연작소설집 '푸른 혼'(이룸)을 냈다.

이른바 '인혁당 사건'은 1975년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군사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피고 8명을 대법원 상고가 기각된 지 20여 시간 만에 형을 집행해 대표적 인권침해 사건으로 비난받았던 사건.

김씨는 바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희생당한 여정남 등 8명을 주인공으로 삼아 여섯 편의 연작소설을 완성했다.

김씨는 "1974년 4월 언론을 통해 알게 된 민청학련사건은 당면한 현실과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각성을 안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면서 "이 사건에 연루돼 억울하게 사형당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여덟 명 가운데 대부분은 내가 청소년기를 보낸 대구가 연고지여서 언젠가 소설로 쓰려 했다"고 말했다.

저자는 2002년부터 이 사건을 소설화하기로 하고 관련 자료를 모은 뒤 2003년 '고난일지'를 시작으로 여섯 편의 연작소설을 썼다.

'고난일지'는 이번에 연작소설집으로 묶으면서 '청맹과니'로 제목을 바꿨다.

사형당한 실제 인물들은 소설에서 조금씩 이름을 바꿔 등장한다.

수록작 가운데 '팔공산'은 주인공 송영진이 일제강점기 때 사회주의자들과 어울렸다가 해방 이후 '빨갱이'로 낙인 찍혀 당국에게서 지속적으로 고초를 겪는 모습을 그렸다.

10년째 팔공산에서 양봉 일을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가 느닷없이 인혁당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서대문구치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지는 과정이 그려졌다.

이준병과 김길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두 동무', 소설에서 대처승의 아들로 묘사된 여의남이 떳떳하게 죽음을 맞는 모습을 담은 '여의남 평전', 1960년대 인혁당사건에 연루됐다가 10여 년 만에 인혁당 재건 모의 혐의로 죽어간 39세 남자 서상원의 이야기를 그린 '청맹과니', 주인공 도운종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처형순간에 8명을 한 자리에 모아 이들의 혼을 위로한 '투명한 푸른 얼굴', 유족들의 참담한 심정을 소설화한 '임을 위한 진혼곡'이 소설집에 실렸다.

작가 김씨는 "이 소설에서 박정희 정권의 가장 나쁜 부분인 인권탄압을 다뤘지만 그의 공과에 대해 지나치게 이분법으로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과거사는 반드시 규명돼야 하지만 그것은 양심적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에밀 졸라가 프랑스 군부의 조작인 드레퓌스 사건을 두고 정의·진실·인권옹호를 외치며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을 발표했듯이 이 소설을 '인혁당 사건'으로 처형된 8명을 통해 이 시대의 정의·진실·인권옹호의 현주소를 준엄하게 질문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연합)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