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클릭-문화회관 법인화
대구의 문화 인프라는 어느 도시에 뒤지지 않을 만큼 잘 구축되어 있다.
서울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오페라 전용 극장이 있으며 대부분의 구에는 문화회관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외관상의 화려함 뒤에는 내빈(內貧)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낮은 GRDP(지역내 총생산)를 기록할 만큼 열악한 대구의 재정 여건상 충분한 예산지원이 되지 않아 이들 문화회관에게서 주민 문화센터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 시점에서 의정부 예술의 전당이 재단법인화를 추진하고 있어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지역 문화시설 운영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 모색이 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현황
기초단체장들이 문화 행정을 외치며 경쟁적으로 문화회관을 짓다 보니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상황이라 할 만큼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1975년 대구시민회관이 개관한 이후 1983년 대구어린이회관, 1990년 대구문화예술회관, 1995년 대구동부여성회관, 2003년 대구학생문화센터와 대구오페라하우스가 건립됐다.
구청에서도 문화회관을 잇따라 세웠다.
1998년 대덕문화전당과 서구문화회관을 개관했으며 1999년 북구문화예술회관, 지난해에는 동구문화회관, 봉산문화회관, 달서구첨단문화회관이 문을 열었다.
여기에다 수성구청이 내년 5월 개관 목표로 지산동 녹원맨션 맞은편 5천700평 부지에 총 256억 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문화예술회관을 건립하고 있다.
8개 구군 가운데 문화회관을 갖고 있지 않은 곳은 달성군뿐이다.
반면 16개 구군이 있는 부산시의 경우 시에서 건립한 부산문화회관, 부산시민회관과 구청에서 세운 금정문화회관, 동래문화회관, 을숙도문화회관이 공공 문화시설 전부다.
경성대 콘서트홀, 동아대 석당홀, 가람문화센터 등 민간시설이 공백을 메우고 있다.
인구가 260여만 명으로 대구와 비슷한 인천도 부산과 사정이 비슷하다.
공연, 전시회를 열 수 있는 문화시설로는 시 직영 인천종합문예회관이 유일하고 10개 구군 가운데 계양구, 서구, 강화, 옹진군만이 문화회관을 갖고 있다.
인천국악회관은 민간 위탁 운영 중이다.
대구시교육청이 운영하는 학생문화센터를 제외한 11개 지역 문화회관의 올 예산은 총 326억2천800여만 원. 예산 대부분이 인건비로 지출되고 있어 문화 사업에 투자할 여력은 많지 않은 실정이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의 경우 7개 시립예술단 운영에만 82억2천300만 원이 소요되는 가운데 인건비가 70억 원으로 85%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 상황이 열악해 문화 사업비 증액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대구시 재정 자립도는 60% 수준으로 70%에 이르는 인천, 부산에 비해 떨어진다.
더욱이 구·군청의 재정자립도는 30~40% 수준이며 대구시는 2조3천억 원(2003년 말 기준)의 부채를 안고 있다.
▨한계 상황에 이른 경쟁력
문화회관들이 사업비 부족에 시달리다 보니 창조적인 기획프로그램 대신 베끼기에 급급, 행사나 문화 강좌의 특성이 사라지고 중복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결국 사업비 부족이 주민들의 욕구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프로그램 부재로 이어져 문화회관이 주민들로부터 외면 받는 원인이 되고 있다.
관 주도로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칠 수 없고 시설 개선조차 쉽지 않다.
일례로 지난달 대구문화예술회관 내 레스토랑과 커피숍 2년 운영권을 입찰로 따낸 리더스클럽은 영업권 5년만 보장되면 2억 원을 투자, 패밀리레스토랑 형식으로 시설을 개조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으나 무산됐다.
현행 공유재산법에 최대 영업기간을 3년까지만 보장하고 재입찰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 리더스클럽은 2년 후 재입찰에서 다시 영업권을 따내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돈을 투자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문화회관 관리운영자들의 전문성 부족과 관료주의 타성은 늘 도마 위에 오르는 문제점이다.
전문 문화 마인드 형성에는 경험이 중요한데 현재 2, 3년씩 돌아가는 순환보직으로는 공무원들의 전문성이 확보되기 어렵고 변화를 싫어하는 태도는 번번이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다.
한 예술계 인사는 "행사를 하려면 공무원들은 안 된다는 말부터 한다"며 "이를 설득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바람에 정작 행사 기획 등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대안은
일부에서는 문화에 경제 논리를 대입하는데 반대한다.
문화는 시민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드는 윤활유인데 수익성을 따지면 문화 활동이 위축받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문화 산업이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지역 예술계 인사들과 공무원들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문화회관들이 법인화 되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관건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누가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무릅쓰고 법인화를 추진하느냐는 것.
현재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민간 위탁이다.
법인화의 충격과 반발을 줄이고 적응 시기를 마련해 줄 수 있으며 이미 대덕문화전당과 동구문화회관 등의 민간 위탁 운영 사례가 있기 때문. 대덕문화전당의 경우 2003년 7월부터 남구문화원으로 민간 위탁된 이후 관 운영 시절 최대 11억 원이었던 예산이 지난해 7억7천500만 원으로 줄었으며 최대 23명에 이르던 인력도 현재 10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반면 순수 사업비는 예산 감소에도 불구하고 관 운영 당시 2천만~3천만 원에 불과하던 것이 현재는 1억여 원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기획 공연이 이전에는 연 5, 6번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한 달에 1.5회꼴로 이루어지면서 공연의 양뿐 아니라 질도 향상되는 효과도 낳았다.
동구문화회관도 올 예산 11억 가운데 구청 보조금은 4억5천만 원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관과 문화센터 수입으로 충당한다.
장기적으로는 법인화를 한 뒤 문화회관 전체를 총괄할 수 있는 민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화회관별 특징을 파악, 특성화를 통해 운영 차별화를 기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문화재단 설립이 필요하다고 지역 예술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또 법인화를 하더라도 최소한의 경비를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완전 독립 법인화의 경우 문화회관 운영이 돈벌이에 급급한 상업주의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는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 극장 등도 밀라노시로부터 예산 일부를 지원받는 등 외국에서도 이런 운영 형태의 문화시설이 많이 있다.
이와 관련 경기도 의정부시는 최근 예술의 전당을 9월까지 재단법인화 한다고 밝혔다.
시는 법인 설립기금으로 올해 시비 20여 억 원을 지원하고 내년부터는 시설운영경비 및 인건비 등 재단법인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비만을 지원할 계획이다.
세종문화회관도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독립법인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국립오페라단의 경우 2000년 독립법인화가 된 이후 재정 자립도가 2000년 30%에서 2001년 37%, 2004년 45%로 향상되고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사진: 지난해 11월 공연한'사랑의 묘약'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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