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못된 불효아들이 살았어. 늙은 아버지하고 둘이서 사는데, 그저 허구한 날 아버지 구박하는 게 일이야. 아버지가 밥 먹는 걸 보면 밥벌레라고 구박, 일하는 걸 보면 느림보라고 구박, 누워 있으면 산송장이라고 구박, 서 있으면 거치적거린다고 구박, 이렇게 보는 족족 구박을 한단 말이지. 그래도 늙으신 아버지는 그 심술을 다 받아주면서 한번도 화내는 법이 없었대.
하루는 아들이 일 나가고 아버지 혼자 집을 보는데, 이웃마을 잔칫집에 놀러오라는 기별이 왔네. 그런데 입고 갈 옷이 있어야지. 아들이 저 혼자만 철철이 옷을 사 입고 아버지한테는 도통 옷을 안 사 주니까 그렇지. 아버지가 생각다 못해 장롱에 넣어 둔 아들 새 옷을 꺼내 입었어.
'잠깐 빌려 입고 갔다가 아들 오기 전에 와서 도로 넣어 놓으면 될 테지.'
이렇게 생각하고 그 옷을 입고 잔칫집에 갔지. 가서 재미있게 놀다가 보니 그만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 어느덧 저녁 무렵이 됐는데, 대문간이 왁자하기에 가만히 보니 아뿔싸 이런 낭패가 있나. 아들이 작대기를 하나 꼬나들고 씩씩거리면서 달려오지 뭐야. 그새 집에 돌아와 보고 아버지가 제 옷 입고 간 걸 알고 화가 나서 그러는 거야.
아버지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들한테 작대기로 얻어맞을 일보다 남우세 당할 일이 더 걱정이거든. 그래서 얼른 꾀를 냈어. 여러 사람 들으라고 일부러 큰 소리로 외쳤지.
"여보게들, 저것 보게. 우리 아들이 지팡이 들고 날 마중 오네그려."
다른 사람들이 보니까 정말 아들이 지팡이처럼 생긴 작대기를 하나 들고 들어오거든. 모두들 큰 효자라고 아주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어. 다투어 옆자리에 앉히고 음식을 권하면서,
"자네는 어찌 그리 효성스러운가."
하고 칭찬을 해대니, 아들이 그만 얼떨떨해져 가지고도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지. 그래서, 아버지 때리려고 들고 온 작대기를 아버지한테 쑥 내밀면서,
"아버지, 이 지팡이 짚고 가세요."
했어. 정말로 효자 노릇 한번 한 거지.
그 뒤로도 아버지는 틈만 나면 동네 사람들한테 아들 자랑을 늘어놨어. 아들이 맛난 음식을 해 줘서 잘 먹었다는 둥, 아들이 이부자리를 봐 줘서 잘 잤다는 둥, 말끝마다 자랑을 해대니 동네 사람들이 듣고 다 참말인 줄 알지. 그래서 아들을 만날 때마다 아주 칭찬이 입에 붙었어.
"오늘은 아버지한테 맛난 음식을 해 드렸다며? 참 효자일세."
"오늘은 아버지 이부자리를 봐 드렸다며? 참 효성스럽기도 하지."
이렇게 칭찬을 늘어놓는데, 아들이 듣고 보니 쑥스럽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하고 그렇거든. 그것도 어디 한두 번이라야 말이지, 하루에도 열 번씩 스무 번씩 만나는 사람마다 효자라고 입에 침이 마르니 절로 마음이 스르르 바뀌는 거야.
'정말로 그렇게 한번 해 볼까?'
이런 생각이 든단 말이지. 그래서 정말로 아버지한테 맛난 음식도 해 드리고, 이부자리도 봐 드리고, 한 번 두 번 그러다가 그게 점점 버릇이 돼 가지고 나중에는 진짜 효자가 됐다는 거야.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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