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저자-'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열정' 철학자 박이문씨

입력 2005-01-28 11:03:42

"탈세속적 가치를 찾아 철저하게 산 인생 기록"

"스물두 살의 키에르케고르가 자신의 일기에 적어 놓았듯이, 나는 '목숨을 걸 수 있는 가치'를 찾아 그런 가치에 따라 디오게네스나 마르크스, 안티고네나 사르트르처럼 투명하고 강렬한 삶을 철저하게 살고 싶었다."

포항공대 교양철학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퇴임을 한 원로 철학자 박이문(본명 박인희'75)씨는 이번에 출간한 '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열정'이란 책에서 자신이 추구했던 것은 자신을 비롯한 모든 존재와 현상에 대한 궁극적 의미의 발견 즉 일종의 종교적 진리의 발견과 체험이 아니었던가라고 회고한다.

시인'작가로 인간의 영혼을 흔들 수 있는 예술작품을 열정적으로 창조하는 강렬한 삶을 살고 싶었고, 넓은 의미에서 사상가'철학자인 동시에 문필가를 꿈꾸어 왔는데, 그렇게 살면서 정말 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라고 되돌아보았다.

'지적 열정을 추구한 나의 삶 나의 길'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전형적인 시골 유가(儒家)에서 태어나 자란 한 소년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프랑스 파리로, 미국'독일'일본으로 지적 방랑을 거듭하다 조국에 돌아와 노년을 보내기까지의 그 여정이 빼곡하게 기록된 지적, 사상적 일대기이다.

저자는 이 책 출간이 "그동안 나는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왔던가"라는 물음에 대한 전반적인 대답이라고 했다. 그는 '행복한 허무주의자 열정'이란 책의 제목이 조금 모순된 뜻을 지녔다는 이야기에 대해, 니체나 사르트르 같은 사람들은 실존적으로 허무주의적인 인간의 존재상황을 인정하면서 열정적으로 살아가지 않았느냐고 되묻는다.

자신이 허무주의적인 세계관을 가진 것은 인생을 비관하거나 절망적으로 보기 때문이 아니라 비인격적, 비의인적 세계관에 입각해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따라서 이 책은 어떻게 보면 탈세속적 가치를 찾아 인간적인 열정을 갖고 살아온 한 인생의 기록이라고 한다.

저자는 청년기 자신의 삶의 길을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이 사르트르라고 했다. 그리고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에서 2년간 '철학세미나' 강의를 배웠던 데리다는 인생의 은사라고 소개했다.

그는 10대에는 '허무주의적 문학소년'이었다면, 20대에는 '우울한 허무주의자'였고, 30,40대의 자신이 '철학적 허무주의자'였다면, 지금은 '행복한 허무주의자'로 자처한다. 그리고 이제 남은 여생의 작업이자 필생동안 추구해온 시와 사유, 문학과 철학의 집적이자 결과물인 '둥지의 철학'을 완성시키려 한다.

그는 이에 대해 "철학은 고정하는 실체를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새들이 둥지를 짓듯 정교하게 만들어가는 관념적 구축의 과정에서 생성되는 건축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철학이란 새들이 지어가는 둥지처럼 이미 있는 재료를 기반으로 재건축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책에서 일관되게 나오는 주제인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것에 대해 "인생의 정답은 없다고 할지라도 그 과정에 충실하는 것이 아름다운 삶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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