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증후군' 딸 간병 황길순(54)씨

입력 2005-01-26 11:19:58

'이웃사랑' 취재진은 '무조건적인 헌신과 사랑'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딸의 간병을 위해 8년째 가톨릭대학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어머니 황길순(54)씨. 취재진이 휴게실에서 잠깐만 얘기하자고 부탁하자 "우리 딸, 엄마가 금방 올게 음악 듣고 있어'하며 연정(24.여)씨의 배를 토닥토닥 두드려줬다. 황씨는 입원실 창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에만 의지한 탓인지 얼굴과 팔 곳곳에 버짐과 알 수 없는 피부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리 딸은 다운증후군입니다. 8년 전 두 칸 밖에 안되는 계단에서 굴러 경추를 다쳤는데 스스로 숨을 쉴 수 없게됐습니다. 인공호흡기가 없으면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기운이 없는 듯 담담하고 나즈막한 목소리로 읖조리듯 얘기를 꺼냈다. 그러니까 8년간 1평도 안되는 딸아이의 침대칸에서 생활한 탓인지 휴게실까지도 걷기 힘들어 하는 듯 했다.

"저기 링겔꽂이를 끌고 다니는 여학생 보이죠? 저기 저 휠체어 타고 다니는 할아버지도요. 컴퓨터 하는 저 청년. 제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들이예요. 혼자 숨쉬고 어디든 다닐 수 있는 사람들..."

황씨는 벌써 5년 전 딸이 일어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포기했다고 했다. 인공호흡기를 빼면 이젠 몇시간도 혼자 숨쉬지 못하고 입술이 파랗게 변해버리는 딸은 이제 일어설 수 없다. 기적이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식사는 제대로 하세요? 잠은 어디서 주무시구요?"

황씨는 1끼 천원하는 병원밥을 먹지 않는다. 3끼면 3천원, 한달이면 9만원인데 그 돈을 아껴 병원비로 써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맘씨좋은 간병인들과 다른 환자 보호자들이 십시일반해주는 밥 한공기가 있어 매 끼니를 떼울 수 있다고 했다. 잠은 8년째 연정씨의 입원침대에 딸린 간이의자에서 새우잠을 잔다.

"더 힘든건 5년전부터 연정이가 입을 닫아버린거예요. '엄마'하는 연정이 목소리 정말 듣고 싶은데...하루 종일 이어폰을 끼고 FM 음악을 듣는게 딸애의 하루예요. 저는 혼자 말하고 혼자 웃다가 화장실에서 혼자 울어요."

황씨는 병원 밖에 출입하지 않는다. 잠깐 짬을 내 휴게실도 찾지 않는다. 기운이 없어서 차라리 그 시간에 어디서 잠시 눈을 붙였으면 한다고 했다. 황씨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젖은 수건으로 연정이의 온 몸 닦아 주고 하루에 여섯 번씩 죽을 먹인다. '욕창'이 일어날까 수시로 축 늘어진 딸의 몸을 몸을 이리저리 돌려주고 손바닥을 둥글게 만들어 소리나게 마사지한다. 그 와중에도 혼잣말을 하고 반찬없는 공기밥으로 끼니를 떼운다.

"애 치료비로 20평 아파트를 팔았지요. 연정이 아버지는 가내수공업하는 어딘가에서 일하고 있어요. 병원에는 못 오게 해요. 맘만 아프잖아요."

8년 동안 집을 6차례 옮겼다. 황씨는 지금 아빠와 두 아들이 동촌 어딘가에서 사글세 살고 있다는 것만 알 뿐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집에 가본게 손가락으로 셀 정도다. 황씨의 '큰 소원'은 딸이 고통 없이 잠을 자다가 죽는 것이다. "5년 전에만 해도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는데..."

"이런말 하면 좀 그렇지만 동시에 죽을 수만 있다면 약을 먹어볼까 하루에도 수십번씩 생각하지요. 애 혼자 어떻게 보내요. 우리가 죽어야지 다른 식구가 살지."

1년전부터 밀린 병원비만 2천여만원. 두 아들은 청년실업자. 언제까지 누워있어여 할 지 모를 '스물 네 살짜리 갓난아기'를 보살피고 있는 어머니는 오늘도 딸 곁에서 기도를 드린다. 저희 '이웃사랑' 제작팀 계좌번호는 대구은행 069-05-024143-008 (주)매일신문입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설명 : 어머니 황길순씨는 다운증후군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딸 연정씨를 돌보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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