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7년 1월 25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는 이탈리아 북부 카노사성 밖의 눈 속에서 3일간 맨발로 서 있으며 당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로부터 굴욕적으로 사면을 받아야 했다. 이른바 '카노사의 굴욕'. 이 사건은 중세시대 교황권의 정점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건의 발단은 그레고리우스 7세가 교황 자리에 오르면서 교직자를 임면하거나 혹은 교회에 속하는 재산 감독 권한을 국왕이나 제후에게서 빼앗아 교황의 권한으로 귀속시키려 했기 때문이었다. 이 조치를 따를 경우 당시 독일 제국은 토지의 절반이 교회의 소유였기 때문에 제국의 주권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그레고리우스 7세와 하인리히 4세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고, 교황은 황제를 파문하고, 이에 반박해 황제는 교황을 폐위할 것을 선언했다.
이러한 교황과 황제의 대립 상황에서 역대 황제들의 집권정책에 불만을 가진 제후들이 파문이 취소되지 않을 경우 왕을 폐위키로 결의하자 하인리히는 어쩔 수 없이 교황에게 용서를 빌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교황은 독일 제후와의 동맹 기회를 놓치게 된 반면 황제는 시간을 벌어, 실리 면에서 황제의 정치적 승리로 평가되고 있다.
▲1395년 정도전 등 '고려사' 37권 편찬 ▲1924년 제1회 동계올림픽 개막 ▲1886년 조선 박문국, 관보 '한성주보' 발간 ▲1947년 미국 갱두목 알 카포네 사망.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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