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평인사, 코드부터 없애자

입력 2005-01-24 15:5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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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오후 노 대통령은 교육부총리 인사파문과 관련해 민주당 소속 인물을 임용하려 한 것은 야당 파괴 음모라는 야당의 반발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적 의도가 없음'을 해명했다. 벼슬 한자리 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인사들이 줄을 서는 마당에 씌워주는 감투도 마다한 반골이 나왔으니 임용권자 입장에서는 다급하게 회견을 해야 할 만큼 체면이 구겨진 모양새가 돼 버렸다.

통치자가 인재를 구하는 일은 어찌보면 누워서 떡먹기 만큼이나 쉬운 일일수 있다. 종이 한장(임명장) 써주면 논밭갈던 필부(匹夫)도 하루 아침에 고관대작 신분이 될 수 있는 마술과 같은 권력의 힘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 정권의 인사는 교육부총리 자리 같은 경우 코드인사란 비판과 함께 갈팡질팡 난맥상을 보여왔다.

뒤늦게 나마 상생정치를 위해 너'나 가리지 않고 두루 인재를 찾아 쓰겠다는 탕평인사를 강조 하긴 했지만 이미 노 정권이 집권초기부터 사용해온 추천에 의한 인재등용 방식은 조선조 때의 현량과(賢良科)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량과란 원래과거시험에 의한 등용제도 만으로는 아예 시험에 응시조차도 않는 덕을 지닌 초야의 알짜 인물을 구할 수 없는 약점이 있어 시험없이 추천으로 뽑자는 인사제도였다. 조선조에 이 현량과 제도를 최초로 도입한 중종이 1518년 6월5일에 내린 전교를 보면 그저께 노 대통령이 한 말과 취지에서는 닮은 점이 많다.

"나라를 위하는 일은 인재를 얻는 길이 가장 중요하다. 사람을 천거하는 책임은 재상들의 큰 임무이다. 옛날 주공(周公)이 그랬듯이 훌륭한 인재를 초청하기 위해 밥을 먹다가도 먹던 것을 그만두고 어진 인물을 잃지는 않을까 걱정할 정도로 어진 통치자는 어진 사람 구하는 것을 급선무로 해야 한다.

세상에 어찌 인물이 없겠느냐. 내가 정치에 임하면서부터 어진 사람 구하기를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하였으나 벌써 10년이 되어도 사람(인물)이 없으니 어찌 개탄치 않으랴 정부는 나의 뜻을 알고 널리 유능한 사람을 천거하라" 하였다.

매우 그럴듯한 전교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노 정권의 교육부총리 인사만큼이나 실패작으로 끝나게 된다. 이유는 첫째 추천 자체가 끼리끼리 코드 인사였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덕을 지닌 알짜 인물들은 당파정쟁의 정치판에 끼어들기 싫어 천거를 피했기 때문이며 세번째는 추천등용인재가 시험으로 등용돼 있던 기존 관료들과 뜻이 맞지 않음으로써 국가조직이 분열됐기 때문이었다.

중종이 현량과 시행 전교를 내렸을때 영의정 정광필은 추천 제도를 극구 반대하면서 '현량과 제도가 중국에서는 잘 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도리어 폐단만 생길 것'이라고 반대했다. 그리고 그의 예견대로 이듬해 추천에 의해 관직에 등용된 28명의 인물들은 바로 그 해 기묘사화가 일어났을때 '추천 인재 대부분이 특정 당파쪽 사람들이었으므로 파직하라'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시행초부터 난맥상을 드러냈다.

이번 노 대통령의 탕평인사 다짐 역시 지난 2년간 참여정부가 노골적으로 보여온 코드 인사가 계속되고 대선공신들에 대한 잔치떡 갈라주기식 추천인사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500년 전 현량과 폐단의 역사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노 정권의 인사팀은 말할 것이다. '전문성을 지니고' '개혁의지가 확고한'인물들만 골라 추천하고 등용했다고.

왕조시대때도 추천할때는 다 그렇게 말했다. '학문이 넉넉하고 지조와 학행(學行)이 있는 사람'이라고.

그러나 그렇게 전문성과 개혁의지가 두드러진 뛰어난 인물들만 잘 골라 노 대통령을 에워싸고 있었다면지난 2년간 왜 장관들을 그렇게 자주 갈아치워야했고 오른팔이니 왼팔이니 하던 일부 측근들은 감옥에나 갔어야 했는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추천된 인사들이 다 그런 수준이란 말은 아니다. 지금도, 또는 중간에 직책을 그만둔 인사들중에도 출중한 인물들은 적지않았다. 다만 이번 교육부총리 인사파문을 보면서 그동안의 코드인사나 졸속한 현대판 현량과 제도의 폐단을 추스려본 뒤에 탕평인사를 말하자는 것이다.

또한 덕있는 초야의 알짜인물은 매력없는 왕조가 뽑는 과거에는 응시를 않았듯이 부총리 감투를 씌워주겠다는데도 사양하고 국회의석유지를 노린 정치적 꼼수라는 의심과 비난을 받는 인기없는 정권이 돼서는 알짜인재를 구할 수 없겠구나는 겸허한 생각도 해봐야 한다.

죽을 쑤다 밀려난 장관을 또 어디 한자리 챙겨주는 식의 인사도 이젠 끝내야 한다. 정직하고 매력있는 정권을 만들면 좋은 인재는 저절로 모인다. 탕평인사 말다짐도 좋지만 좋은 인재들이 스스로 모일만한 신뢰받는 정부, 코드같은거 없어도 서민들이 잘 살 수 있는 정부부터 만들라. 임기말까지 끝끝내 코드인사틀속에서 못 벗어난다면 500년전의 끼리끼리 부패한 왕조정권이나 개혁정권이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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