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섬유 무엇을 배울 것인가-(4)디자인 불모지의 현주소

입력 2005-01-24 09:28:02

지역섬유업체들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손꼽는 밀라노. 하지만 2005 하임텍스틸에 참가한 지역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패션도시를 목표로 한 '밀라노프로젝트'는 먼 길로만 느껴졌다.

6관 한 쪽에 10여 개 한국기업이 모?있는 한국관. 이 곳엔 기능성 소재 중심의 홈제품만 즐비할 뿐 디자인을 내세울 만한 것들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화려한 색채와 우수한 디자인 제품을 전시한 유럽관과는 달리 바이어들의 발길을 끌 만한 아이템은 드물었다.

탁월한 디자인 하나가 기업을 먹여 살리는 '디자인 경영'시대가 산업전반에 도래했다.

이에 반해 지역 섬유업체들의 디자인에 대한 인식은 크게 낮은 편. 경기 불황과 채산성 악화로 기업들이 디자인 투자를 꺼리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만난 ㅇ염색회사 관계자는 "디자이너를 한 명 고용하는데 드는 고정비가 만만찮다"라면서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한 디자인을 사는 것보다 바이어가 요구하는 대로 만들어 주는 것이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더 유리하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80,90년대만 해도 디자인실을 갖춘 염색업체가 많았지만 최근엔 거의 철수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하임텍스틸에 참가한 홈텍스타일 업체 (주)유진의 김동선 영업이사는 "디자인은 '시각 마케팅'이고 기능은 '촉감 마케팅'이기 때문에 두가지 모두 맞물려야 경쟁력을 갖춘다"라면서 "하지만 국내 디자이너들은 투자대비 효율이 아직까지는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이 같은 국내 디자인에 대한 불신은 값 비싼 외국 디자인 구매로 이어지고 결국 국내 디자인 시장 환경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역에 텍스타일 디자이너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업계에 따르면 지역에 있는 텍스타일 디자인 스튜디오는 10여 개 미만으로 파악되고 있다.

디자인 가격도 1장 당 10만~20만 원 선으로 외국에 비해 형편없이 낮아 디자인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

윤우디자인 윤미숙 실장은 "섬유업체들은 디자이너들에게 트렌드를 무시한 채 싼 가격에 이런 저런 요구를 많이해 디자이너들의 작업의지를 꺾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 창의력이 요구되는 디자이너에게 한국의 주입식 교육시스템은 디자인 관련 학과 졸업생들의 실무능력을 떨어뜨려 기업에서 재교육을 시켜야하는 부담으로 이어진다.

8명의 디자이너를 보유하고 있는 퀼트 디자인·염색업체 DW MILL의 경우 해외연수 겸 마케팅 활동을 위해 1인당 1천만 원씩 들여 4명의 신입사원을 미국지사로 보내고 있다.

DW MILL 정봉욱 대표는 "국내에서는 텍스타일 전문 디자이너를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라면서 "전문 디자이너 양성을 등한시한 국가와 대학들 때문에 결국 기업이 재부담하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섬유업계들은 한국이 디자인 개발 등 기획생산을 포기하면 2008년 베이징올림픽때는 중국에게 모든 시장을 잠식당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카피(베끼기)와 OEM 방식의 수동적인 생산시스템에서 적극적인 기획생산 시스템으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고 공감한다.

하지만 지역 디자인 환경은 불모지나 다름없다.

대구섬유디자인연합회 여승희(설 텍스타일디자인 이사) 회장은 "섬유경기 악화로 디자인시장이 많이 축소됐다"라면서 "정부가 소프트웨어인 텍스타일 디자인을 등한시해 디자인산업 기반이 무너지면 앞으로 섬유업체들도 비싼 로열티를 지불하며 외국 디자인을 사야하고 '기획생산'으로 전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프랑크푸르트·이재교기자 ilmare@imaeil.com

사진설명 : 뛰어난 디자인 제품과 화려한 인테리어로 바이어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외국 부스와 달리 한국업체들이 모여 있는 한국관은 디자인이 약한 탓인지 바이어들 방문이 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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