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 발상지 아시나요"
청도읍에서 밀양 방향으로 10여분쯤 달리다 차를 멈췄다.
화악산에서 길게 뻗은 봉우리 사이의 깊은 계곡 양지에 50여 가구 정도 됨직한 마을이 보였다.
한 눈에 보기에도 모두 깨끗한 양옥들로 단장돼 있는데다 청도군 전체 마을을 의미하는 212개의 새마을기가 펄럭이는 모습이 심상치않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궁금증은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금세 풀렸다.
'새마을운동 발상지'라고 새겨져 있는 대형 표석은 이 곳이 70년대 초 전국 방방곡곡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났던 새마을운동의 발상지, 청도읍 신도1리임을 알리고 있었다.
이 마을이 새마을운동 시발지가 된 것은 지난 1969년 여름. 당시 경부선 열차를 타고 수해지구 시찰에 나섰던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철도변의 이 마을을 지나가다 유난히 잘 정비된 모습을 보고 "전국 농촌이 신도1리만큼 됐으면 좋겠다"며 잘살기운동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것.
대통령의 칭찬 한마디에 마을에는 야단법석이 났다.
고위 공무원들이 영화배우를 동원한 채 직접 마을을 방문해 홍보영화와 대한뉴스를 제작, 극장마다 대대적으로 방영됐다.
멀리 제주도를 비롯, 전국 각지에서 수천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왔고 외국의 대학생들도 새마을운동을 배우겠다며 몇달씩 마을에 머물렀다.
주민 이종식(68)씨는 "사흘이 멀다하고 높은 사람들이 마을을 방문해 손님맞이에도 여간 애를 먹지 않았다"라며 "마땅히 대접할 만한 것이 없어 하루에 보리차만 몇 말을 끓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천을 복개해 만든 마을 안길의 폭은 20m쯤 된다.
낯선 외지인도 승용차로 편안하게 마을을 돌아볼 수 있다.
말끔하게 단장된 마을 회관에는 이 마을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 전시돼 있다.
바로 박 전 대통령 부부의 사진과 새마을 유공단체 표창장.
당시 이장 박종태(78)씨는 "생색을 내려는 것은 아니지만 새마을운동의 발상지 마을에 단체표장을 제외하고는 그 흔한 훈장 한번 받은 사람이 없어 아쉽다"라며 "다른 지역들이 서로 새마을운동 발상지라 우기는 바람에 마음고생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신도리 마을이 이렇게 잘 사는 마을로 바뀐 데는 일찍이 1950년대부터 마을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한 지도자의 힘도 한몫 톡톡히 했다.
현재 청도군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김봉영(79)씨가 그 주인공.
일제때 공업학교를 졸업한 뒤 객지에서 토목기사로 일했던 김씨는 가정형편상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고향은 찢어지도록 가난했다.
이장을 맡은 그는 "더 이상 가난을 대물림할 수 없다"며 각오를 다지고 오랜 설득 끝에 주민들의 힘을 모아 지역개발사업에 나섰다.
6.25전쟁 당시였던 1952년 연인원 1천800여명을 동원해 길이 2.5km, 폭 4m의 농로를 43일만에 완공하는 쾌거를 이뤄내자 주민들도 그의 능력을 믿고 따르기 시작하면서 지역개발사업은 탄력을 받았다.
그 후 2차 사업으로 집집마다 부엌 개량과 담장 개축, 옥내 장식 등 마을가꾸기사업을 벌이고 부업장려사업으로 감·사과나무를 심어 농가소득 증대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어 지난 1963년부터는 생활개선구락부를 운영해 쌀을 아껴 모으는 절미저축운동을 전개했고 마을 공동구판장·공동작업장도 마련해 남녀노소 구분없이 협동해 개미처럼 일하는 마을의 전통을 세웠다.
정용조(62) 이장은 "마을을 내 손으로 가꾼다는 자조·자립 정신으로 땀흘려 일한다면 멀지않은 장래에 모두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열심히 땀 흘릴 수 있었다"라며 "지금도 주민 모두가 검소하게 생활하면서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을 최고의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라고 했다.
청도군청 이승관 새마을 담당은 "새마을운동 발상지를 기념해 신도리에 20억 원을 들여 새마을운동 전시관을 건립할 계획"이라며 "새마을 중앙연수원을 유치해 새마을운동 발상지 위상을 높이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도 쏟고 있다"고 했다.
청도·정창구기자 jungcg@imaeil.com사진: 신도1리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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