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사람 정들면 끈끈한 의리"
이곳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대구·경북을 어떻게 바라볼까. 친구처럼 여기는지, '딴 나라' 사람으로 선을 긋는지 궁금하다.
▨ 이탈리아 출신 교수
"대구 사람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죠. 하지만 알고 나면 언제인 양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
대구가톨릭대 서양어문학부 마랭고(52·이탈리아) 교수. 올해로 대구 생활이 11년째. 교수는 대구 대명동에서 통학버스로 출퇴근하고 있다
그래서 대구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다.
"대구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야 마음을 열어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모든 사랑을 줄 만큼 적극적이죠."
교수는 재미있는 비유를 했다.
"대구 하면 사과가 유명하잖아요. 사과가 열리기까지는 세월이 많이 필요하지만 열매는 어느 과일보다 많이 열려요. 반면 서울 사람은 토마토라고 볼 수 있어요. 금방 열매를 맺지만 네 댓개밖에 되지 않잖아요."
교수는 대구 사람들을 통해 이웃을 사랑하고, 부모를 존경하고, 예의 바른 것을 배웠다고도 했다.
대학생들에 대해선 "벽을 느껴본 적은 없어요. 허물 없이 대화하고, 점심도 같이 먹으며 늘 재미있게 보냈다"고 말했다.
대구 앞산 입구의 선짓국 집을 즐겨 찾는다는 교수는 "밀라노 프로젝트가 잘 돼 대구와 이탈리아가 가까워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 우즈벡 유학생
영남대 경영학과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 나탈리야(24·여)씨는 2003년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 대구에 왔다.
나탈리야씨의 고향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다.
어머니의 성을 자신의 이름으로 땄고, 외할머니에게서 고려말을 배웠다.
"타슈켄트의 국립 동방대학교에서 한국 경제와 역사를 배웠어요. 그래서 대구가 어떤 도시인지 잘 알아요. 대구도 동방대학의 영남대 출신 교수님의 추천으로 왔거든요."
"'빨리 빨리' 대구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고생했어요. 지금도 급한 것은 싫어요. 대구 친구들은 말도 별로 없어요. 난생 처음 대구에 온 제가 말을 걸기도 서먹하고, 한동안 힘들었죠."
하지만 그녀는 마음을 빨리 연 한국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다고 했다.
짧은 대구 생활이지만 "많이 다녔고, 빨리 대구를 배웠다"고 말했다.
그녀는 대구 친구들과 동성로, 서문시장, 달성공원 등을 자주 갔고 경주, 부산, 광주 등지로 여행도 다녔다.
나탈리야씨는 올 여름 석사 학위를 받을 예정. "기회가 되면 대구에서 직장을 갖고 싶어요."
▨ 일본 기업인
한국OSG 하야시 시게루(56) 전무. 2000년 일본 합작회사에서 파견 온 그는 23일 5년간의 대구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다.
시게루씨는 대구의 잊지 못할 추억으로 '교통'을 꼽았다.
나고야 출신인 그는 세계 18개국을 돌아다녔지만 대구만큼 편리한 교통은 처음이라고 했다.
대구 도로는 사통팔달로 어디든 연결돼 있고 체증도 상대적으로 덜 하다는 것. 시게루씨는 "교통의 중심지인 나고야가 그랬듯 경부고속철 개통으로 대구 또한 도시발전의 새 전기를 만들기 바란다"고 희망했다.
하지만 시게루씨의 가장 안 좋은 기억 역시 '교통'이다.
그는 불법주차만큼은 꼭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에선 불법주차차량이 단 1시간에 사라집니다.
시민 의식도 높지만 행정기관에서 강력한 단속을 벌이기 때문이죠.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주차된 차량들은 대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습니다.
"
시게루씨는 "음식, 문화 등 모든 생활 환경이 일본과 비슷해 즐겁게 일했다"며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마다 자리를 양보해 주는 대구 시민들의 친절함을 늘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 대구로 장가 온 미 강사
"대구가 제2의 고향입니다.
"
패트릭 트래블스(34·미국)씨. 대구대 원어민강사 대표다.
그는 한국인 부인과 국제결혼을 했다.
동갑내기 부인과는 캠퍼스 커플(부인 남호선씨는 같은 대학 강사)이며 5세 딸을 두고 있다.
트래블스씨는 98년 학원강사로 대구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듬해 부인을 만났다.
이내 결혼을 결심했지만 부인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상견례에서 장인 어른이 한 말씀도 하지 않으시더군요. 대구가 왜 보수적인지 실감했죠." 하지만 부인은 "대구의 유교와 전통을 배워온 남편은 알뜰하고 예의가 발라 요즘은 저보다 아버지가 더 좋아하신다"고 귀띔했다.
부부는 휴일이면 대구의 처갓집에 들르거나 문화유적지를 탐방하고 있다.
트래블스씨는 "신혼 때 국제결혼을 바라보는 주위 시선이 따가웠지만 주변 사람들의 이해로 지금은 편견이 많이 사라졌다"고 했다.
또 "대구 신세대들은 문화에 대한 이질감이 별로 없다"며 "외국인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고향인 샌프란시스코를 제외하고는 대구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는 트래블스씨는 진정한 대구 사람이 되기 위해 이곳에서 박사 학위를 준비 중이다.▨ 중국인 노동자
중국인 노동자 순리깡(27)씨는 대구·경북 사람에 대해 아픈 기억이 참 많다고 했다.
순씨는 2000년 12월 입국해 경산, 달성, 성서공단 등에서 일했다
"월급도 안 주고, 조금만 게으름을 피우면 무조건 '가라' 했어요. 2년 전에는 팔을 다쳐 1년간 병원 신세도 졌어요. 욕도 참 많이 들었고, 공장에 가면 급한 사람들만 모인 것 같았아요."
지난해에는 "공장 직원에게 맞아 병원에 한 달이나 입원한 적도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차별과 무시 대상이 아닌 동료로 봐 줬으면 해요."
그러나 순씨는 아픈 기억을 가슴에서 지워버렸다고 했다.
"다쳤을 때 밤낮으로 저를 보살펴주고,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준 시민들이 참 많았어요."
순씨는 지난해 8월 사업가로 변신했다.
중국에서 수입한 농산물을 시장 상인 등에게 팔고 있다.
순씨는 중국에 돌아가면 친구들에게 대구·경북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만 전하겠다고 말했다.
기획팀사팀 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