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외국인-(3)국제화물결/기업

입력 2005-01-21 13:59:36

"선진기술 얻자" 전문가 속속 수입

해외투자가 활발해지면서 대구 주요 기업마다 외국 임원들이 늘어나고 있고, 외국에서 직접 전문기술자를 스카웃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외국 기업인들은 대구 산업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며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추세다.

◇얼마나 되나

대구·경북 산업계의 외국 기업인들은 크게 네 부류다.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에 따르면 합작 등 대구 기업체에 자금을 투자하면서 본사에서 파견된 경우(203명)가 가장 많다.

외국 컨설팅 회사 등을 통해 현지 전문 인력을 채용하는 케이스(70)도 늘어나고 있으며 대외무역법에 따라 무역업(9)에 종사하거나 외국계 회사가 대구에 주재시키는 기업인들(7)도 있다.

'해외투자'는 1990년대 후반부터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2004년 외국인투자금액은 4억6천957만달러로 24개국, 152개업체에 이르고 있으며 자동차부품, 기계금속, 전기전자, 정보통신, 섬유, 음식, 숙박 등 업종도 광범위하다.

◇어떻게 생활하나

18일 오전 대구 성서공단 한국OSG(주). 하야시 시게루(56) 전무는 탭(나사 홈을 만드는 공구) 생산 현장에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있었다.

2000년 일본 합작 회사에서 대구로 파견 온 시게루씨는 이 분야에선 세계적 수준의 전문가. 하루 세차례씩 전 공정을 둘러보고 불량이 발생했을 땐 3, 4시간을 씨름하며 문제를 해결한다.

불량이 발생하면 철저히 원인을 분석해 현장 직원들의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주는 게 시게루씨의 가장 중요한 업무다.

대구생활 5년째를 맞은 그의 취미는 한국어 공부와 여행. 일과가 끝나면 사택(공단 인근 아파트)에서 꼭 1, 2시간씩 우리말 교재를 펼친다.

한국어가 조금씩 늘면서 주말을 이용해 경주, 부산 등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 지난 5년간 강릉, 완도, 보길도 등 20여곳의 전국 명소를 돌았다.

대구시에 따르면 해외 투자 금액이 50만달러 이상인 대구 41개 업체의 외국인 임원은 현재 18명으로 99년 3명보다 6배 증가했다.

대구·경북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외국인 임원은 단연 일본 기업인들(13명). 근면이 몸에 배인 일본인들은 대부분 기업과 직장을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최근 '대구 일본인회'를 통해 결속력을 높이고 있다.

10여년 전 발족 당시 5, 6명에 불과했던 회원 수가 현재 대구, 구미 주요 공단을 합쳐 20명을 웃돌고 있다.

대구 달성공단의 대한소결금속(주) 아케치 키요야키(58) 부사장, 성서공단의 신화정밀(주) 토시하루 이노우에(63) 생산고문 등 지난 2년동안만 10여명이 한꺼번에 가입했다.

매달 한차례 경산, 선산 등에서 골프 모임을 열고 있으며 기업 정보를 교환해 시너지 효과도 얻고 있다.

한국OSG 시게루 전무는 "일본회는 학계, 문화계 등 다른 일본인 모임들과도 교류하고 있다"며 "구미공단을 중심으로 일본 기업가들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 모임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텍 모세 샤론(이스라엘) 사장, 호텔 인터불고 볼프강 스폴(스페인) 총지배인 등 다른 외국인 기업가들도 가끔씩 사석에서 만나 친분을 쌓고 있다.

대구·경북 산업계에 새롭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외국 기업인은 전문기술인력들이다.

17일 성서공단내 경창산업. 대구생활 5개월째를 맞는 브라이언 토마스(48)씨는 실험실에서 고무 표면처리 분석에 한창이었다.

그는 지난해 9월 자동차 와이퍼를 만드는 경창산업의 기술이사로 스카웃됐다.

토마스씨는 미국 뉴욕, 디트로이트를 무대로 20여년간 와이퍼 고무 기술자로 일했고 컨설팅 업무를 보던 중 한국 자동차부품업체와 인연을 맺은 것.

토마스씨의 최대 목표는 경창산업 고무기술을 세계 넘버원으로 만드는 것. 하루종일 공장, 실험실을 오가며 품질 향상과 신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 독일 부품업계에도 밝은 그는 새로운 거래선을 개척하는 데에도 힘을 보탤 계획.

◇불편한 점도 있어요

"지난 10년간 대구의 변화는 눈부실 정도입니다.

"

평화발레오 에릭발리베(46·프랑스) 부사장은 외국인 기업 임원 중 대구에 가장 먼저 온 사람이다.

그는 "대구 국제공항이 생기면서 일본, 중국 시장 공략이 유리해졌고 대구-포항, 중부 고속도로 개통으로 국내 물류에도 큰 도움을 받고 있다"며 "국제 노선을 좀 더 다양화하고 해외투자기업의 인센티브를 늘린다면 대구는 명실상부한 국제 기업도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발리베씨는 해외투자의 가장 큰 걸림돌로 '교육'문제를 꼬집었다.

초교 5학년 자녀를 둔 그는 유치원때부터 대구 교육기관에 아이를 맡겼지만 끝내는 한계상황에 도달했다.

지난해 여름 대구 생활 10년을 끝으로 부산으로 이사한 것. 현재 하루 4시간 자동차를 운전하며 출퇴근하고 있다.

"대구 아이들이 낯선 또래 '프랑스' 학생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은 것 같아요. 무엇보다 대구 교육기관 중에는 국제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 단 하나도 없었죠."

2001년 대구에 파견 온 신화정밀(주) 가와사키 히로시(46) 공장장 경우 아예 처음부터 가족을 데려오지 않았다.

외국인학교가 없는 대구 실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히로씨는 사진, 그림그리기 등 취미 활동을 통해 낯선 이국 생활을 이겨내고 있지만 늘 가족 생각이 간절하다.

대구의 외국 기업인 18명 중 가족과 같이 생활하는 외국인은 2명에 불과했다.

자녀 교육 때문에 혼자 대구에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구시 배영철 투자통상과장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2007년엔 대구에도 외국인학교가 들어설 예정"이라며 "외국인 학교는 단순한 국제화를 넘어서 해외투자를 활성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탐사팀=이종규기자 jongu@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사진: 전문 엔지니어로 대구 성서공단 내 경창산업에 스카우트된 브라이언 토마스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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