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육영수 여사

입력 2005-01-20 13:45:48

'이제는 슬퍼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건만/ 문득 떠오르는 당신의 영상/ …그 온화한 미소 백목련처럼 청아한 기품/ 이제는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 …평생을 두고 나에게 "여보" 한 번 부르지 못하던/ 결혼하던 그날부터 이십사년간/ 하루같이 정숙하고도 상냥한 아내로서/ 간직하여온 현모양처의 덕을 어찌 잊으리/ 어찌 잊을 수가 있으리.'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

○…우리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꿨던 비극적 사건-박 대통령 저격사건과 육영수 여사의 피격 관련 문서가 20일 공개됐다. 1974년 8월 15일의 이른바 '문세광 사건' 관련 문건으로서 사건 발생 30년이 지나 공개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날, 제29회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돌연 터져나온 한 발의 총성. 식장안이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된 그 순간에도 홀로 꼿꼿이 앉아 있던 육 여사는 끝내 저격범의 흉탄에 쓰러졌다. 온 국민을 경악과 충격으로 떨게 했던 순간이었다.

○…긴 목에 얌전한 올림머리, 우아한 한복 차림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던 여사. 춥고 배고픈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가 따뜻한 미소로 어루만져 주던 여사의 갑작스런 타계에 온 국민이 애통한 눈물을 흘렸다. '포근한 미소''' 비오는 밤에 지다'라는 당시 한 신문의 사설 제목은 이 땅을 적셨던 비감(悲感)을 대변해 주었다.

○…공개된 문서 중 박 대통령 저격 관련 문서는 일지'대일교섭 내용'정부대책수사 및 법률검토'재판기록'언론관련 대응 등 모두 15권으로 1700여 쪽, 육 여사 관련 문서는 각국의 조문 관계 전문과 정부 기본 문서 등 2권으로 모두 700여 쪽 분량이다. 한 홍콩 교포가 조의용으로 내놓았던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할린 교포의 조의편지, 대서양상의 한국 선박 승선원들의 조의문 등 묻혀있던 숱한 사실들이 타임 머신을 타고 우리 앞에 왔다.

○…지난 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육 여사 30주기를 맞아 자신의 홈페이지에 "30년이 흘렀어도 내 마음에 언제나 살아남아 있는 분"이라는 사모곡을 올렸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도 진행형이지만, 육 여사에 대한 국민적 정서는 '그리움'이다. 봄날의 한 송이 목련 같고 학(鶴) 같던 그 모습을 30년이 지난 지금도 못잊어 하는 것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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