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입력 2005-01-19 08:46:09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이성선 '다리'

시인은 다리를 건너가면서도 다리가 외로울까 봐 다리에서 쉬어가며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이다.

아니, 다리를 빨리 지나간 사람 뒤에 남는 다리의 외로움을 투시해 볼 줄 아는 정신의 소유자. 그렇게 예민한 감각과 정서를 가졌으니 시인은 빠른 걸음으로 앞만 보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주변의 달라진 풍경도 쳐다보고 말을 거는 사람.

그렇게 예민한 감각과 정서를 가졌으니, 눈인사도 없이 모르는 체 빨리 나는 그대 앞을 지나쳐서, 혹은 그대는 내 앞을 지나쳐서, 얼마나 큰 상처를 서로 주고받았는가. 용서하시게. 다만 지금은 이 시가 외롭지 않게 하는 방법은 한 번 더 읽어 주고 머물러 주는 일이라네. 박정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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