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이 '미완의 협정'이라는 평가를 받는 데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도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가 공개한 문서와 연합뉴스가 별도로 입수한 한일회담 문서에 따르면 한일 양국은 1962년 말부터 시작된 제6차 한일회담 2차 정치회담 예비절충에서 독도를 둘러싸고 팽팽히 맞섰다.
우리 측은 일 측의 거듭된 독도문제 제기에 한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대국적 견지에서 '제3국에 의한 조정'이라는 타협안을 제의했지만 일본 측은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한 해결을 주장했다.
일본은 1962년 9월 3일 제6차 한일회담 제2차 정치회담 예비절충 4차 회의에서 독도에 대해 무가치한 섬이라면서도 독도 문제를 계속 끄집어 냈다.
일본 측 이세키 국장은 "사실상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다.
크기는 '히비야' 공원 정도인데 폭발이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연막을 피웠다.
우리 측은 같은 해 12월 21일 열린 20차 회의에서 먼저 "독도는 원래 한국 영토임이 분명하고 한일회담 현안도 아니다"며 "최근 일본 측이 기회 있을 때마다 이를 제기,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우리 측은 이어 "일 측이 국내 정치를 이유로 (독도문제) 해결 없이는 회담 타결이 어렵다고 주장, 국교 정상화를 위한 대국적 견지에서 지난번에 김종필 정보부장이 제3국에 의한 조정안을 언급하였던 것"이라며 제3국에 의한 거중조정을 제의했다.
그러나 일본은 같은 달 26일 예비교섭에서 "국교정상화 후 예컨대 1년간 쌍방이 합의하는 조정기관에 의한 조정에 회부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는 국제사법재판소에 부탁하자"고 주장했다.
이 같은 논쟁은 이듬해 1월 11일 열린 회의에서도 계속돼 한국 측 최영택 참사관은 "제3국에 의한 조정만을 고려하고 있다.
제3국에 의한 조정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그 후 문제는 그때 가서 검토할 문제"라고 말했다.
다음은 한일회담 회의록에서 발췌한 독도관련 주요 내용.
▲제6차 한일회담 제2차 정치회담 예비절충 4차 회의(1962.9.3, 일 외무성)
-최영택 참사관:독도문제를 왜 꺼내려고 하는가. '고노'씨는 독도는 국교가 정상화되면 피차가 가지라고 하더라도 갖지 않을 정도의 섬이라는 재미있는 말을 했는데 일 측이 왜 또 (독도문제를) 꺼내려 하는가.
-이세키 국장:사실상에 있어서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다.
크기는 '히비야' 공원 정도인데 폭발이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제6차 한일회담 제2차 정치회담 예비절충 15차 회의(1962.11.19)
-최영택 참사관:독도문제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게 되면 승패가 명백하게 되어 모처럼 조성된 좋은 분위기가 깨질 염려가 있으므로 제3국에 의한 조정에 맡기자는 제의를 김(종필) 부장이 하게 된 것이며, 이는 김 부장의 최종적인 생각인 것이다.
▲제6차 한일회담 제2차 정치회담 예비절충 20차 회의(1962.12.21, 일 외무성)
-(한국 측이 일 측에 제시한 일반청구권 7조 '독도에 관하여'):독도는 원래가 한국 영토임이 분명하고 또한 한일회담 현안도 아니었는데 최근 일본 측이 기회 있을 때마다 이를 제기하여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음을 한국 측은 유감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일 측이 국내정치의 이유로 그 해결이 없이는 회담 타결이 어렵다고 주장하므로 국교정상화를 위한 대국적 견지에서 지난번에 김(종필) 정보부장이 제3국에 의한 조정안을 언급하였던 것이다.
한국 측으로서는 제3국에 의한 거중조정이라는 방법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을 줄로 생각한다.
▲제6차 한일회담 제2차 정치회담 예비절충 21차 회의(1962.12.26, 일 외무성)
-(일본 측): 앞서 제안한 바와 같이 국교정상화 후 예컨대 1년간 일한 쌍방이 합의하는 조정기관에 의한 조정에 회부하고 이에 의하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에는 본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부탁하는 것으로 하는 것이 어떤 견지로부터 생각하든 가장 적당한 해결방식이라고 확신할 뿐만 아니라 공평한 타협안이 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통제안을 제출한다.
따라서 한국 측에 있어서도 동 안을 다시 신중히 검토하길 강력히 희망한다.
▲제6차 한일회담 제2차 정치회담 예비절충 22차 회의(1963.1.11, 일 외무성)
-스기(일 측):사실 독도문제는 국교정상화 후에 토의해도 될 문제다.
그런데 사회당이 떠들고 있으니 독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국교정상화의 국회비준은 어렵다.
▲제6차 한일회담 제2차 정치회담 예비절충 23차회의
-(한국 측): 독도문제에 관하여 한국 측이 제3국에 의한 조정이란 방식을 제의한 것은 일 측의 사정을 최대한 고려한 결과이며 그 이상의 방식은 생각할 수 없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