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의 대중화는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 현상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1989년 해외여행 완전 자유화 이후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동안 주춤거리다가 다시 급증추세로 돌아섰다. 나라 밖으로 나가 세상 보는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인다면 국가와 사회 발전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다. 새롭고 낯선 것들을 보고 들으면서 자신을 겸허하게 만들고, 남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해외여행 바람이 과연 그렇게 건전한가는 문제다.
○…외환위기 전부터 '망국병'으로 지탄받기도 했지만, 무절제한 해외여행과 과소비 풍조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크게 우려된다. 더구나 사치성 여행일 경우 본인이 망가지는 건 물론 다른 사람들과 사회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부유층의 골프 관광 극성도, 학생들의 해외연수 바람도 알뜰 여행과는 거리가 멀게 마련이다.
○…지난 한해 해외여행·유학·의료서비스 등으로 빠져나간 돈이 17조 원이 넘는 모양이다. 이 돈이 나라 안에서 쓰였다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8% 포인트나 높아졌을 것이라 한다. 여기에다 재외동포의 재산 반출·환치기 등 각종 불법 유출까지 보태면 문제는 더욱 달라진다. 말 많은 '골프 관광' '기러기 아빠' 양산 등의 실상이 실감되고도 남는다.
○…내수가 계속 곤두박질치는 가운데 그나마 수출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번 돈들이 해외로 흘러나가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지 않은가. 해외 유학을 부정적으로 봐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의 교육과 의료 서비스나 환경, 돈 있는 사람들의 불안 심리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나라 안에서 돈을 쓰는 분위기가 나아지지 않고는 길이 안 보일 수밖에 없다.
○…아무튼 해외여행 과소비 풍조는 지양돼야만 한다. 과소비는 분명 '자랑'이 아니라 '수치'다. 그것도 나라 밖에 나가서라면 지탄받아 마땅하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극단으로 치닫는다면 계층 간의 위화감이나 박탈감의 골을 깊게 할 뿐, 상대적으로는 많은 사람들과 국가에마저 손해를 끼치게 될 것이다. 정부도 해외로 향한 발길들을 국내로 돌리게 하는 길을 터 나가야 하리라.
이태수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