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을 통해 우리 정부가 청구권 해소 및 경제협력 명목으로 받은 보상금에는 식민지 시절 강제 징용·징병 피해자들의 개인관계 청구권도 명백히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일본 측은 회담과정에서 나중에 개인보상 문제가 제기될 것을 우려해 구체적인 협의를 원했으나 우리 정부는 협정에는 개인청구권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향후 개인관계 청구권이 소멸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 스스로 발목에 족쇄를 채웠다.
게다가 우리 정부는 회담 과정에서도 일본 측으로부터 받은 보상금을 경제개발에 주로 사용할 뜻임을 미리 밝혀 정부가 애초부터 피해자 보상에는 별 의지가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6차 한일회담 청구권위원회 회의록 및 경제협력문제' 문서에 따르면 우리 외무부는 1964년 5월 11일 한일회담 청구권은 정부당국의 청구권은 물론 국민이 보유하는 개인 청구권도 포함되어 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외무부는 ▲각 청구항목에 대한 상환의무의 법적 근거와 사실관계 규명 ▲일본 원화로 표시된 청구권의 환율문제 ▲우리 정부의 행정권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에 관련되는 청구권 처리문제 등에 대한 한일 간 의견차로 사무적으로 해결할 방도가 없어 '김-오히라' 회담을 통해 일괄해결했다고 적고 있다.
외무부는 이어 "청구권 문제를 해결하면 개인 청구권도 포함해 해결하는 것이므로 정부는 개인청구권 보유자에게 보상의무를 지게 된다"며 "단 정당한 청구권을 갖고 있을 경우만 보상하는 한편 보상대상 결정은 신중히 하고 이를 위한 정부관계기관 간의 협의와 대책 수립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정부의 입장은 경제기획원의 ▲진행 중인 교섭이 민간인 보유 대일재산청구권 보상을 전제로 한 것인가 ▲보상하지 않을 경우 국내법상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방침인가 라는 등의 질의에 따른 회신 전문에 나타나 있다.
이런 입장은 1965년 4월 16일 우리 측 수석대표인 이규성 주일공사와 사토 세이지 일본 외무성 조약국 참사관의 개별청구권 면담대화록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토 참사관은 청구권 문제는 법적 문제가 많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지만 이 공사는 '이동원-시이나' 합의에 의해 개인 관계 청구권은 소멸됐으며 향후 양국이 각각 국내적으로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가 문제로 남는다고 말했다고 대화록은 전했다.
이어 같은 달 20일 열린 '7차 한일회담 청구권 및 경제협력위원회 제1차회의'에서도 이 공사는 "'이-시이나' 합의사항에 따라 완전히 최종적으로 모든 청구권이 해결됐다고 해석할 수 있으므로 양국이 국내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만 남았고 따라서 별반 문제가 없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일본 측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소멸됐는지를 확실히 해 둬야 한다는 것이 일본 생각이다. 개인 청구권이 없어진다는 것은 중대한 것이다. 후일 여러 분쟁이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하며 이에 관한 서로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이 공사는 "각종 청구권이 덩어리로 해결됐는데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결국 각각 국내 문제로 취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상금액과 관련, '제6차 한일회담 청구권 관계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회담과정에서 피징용자에 대한 보상금으로 모두 3억6천400만 달러를 일본 측에 요구했다.
즉 생존자 93만81명, 사망자 7만7천603명, 부상자 2만5천 명 등 모두 103만2천684명을 피해자로 집계해 이 가운데 생존자와 사망자, 부상자 각각 1인당 200달러, 1천650달러, 2천 달러씩의 보상금액을 산정해 일본 측에 제시한 것이다.
결국 양측은 무상 3억, 유상 2억, 상업차관 3억 달러로 청구권문제를 '일괄타결'했고, 정부는 '대일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 등을 제정, 지난 75∼77년 8천552명의 사망자에 대해 30만 원씩 모두 25억6천560만 원을, 재산보상 1엔당 30원을 기준으로 7만4천967명에게 모두 66억2천200여만 원을 지급하는 등 총 91억8천769만3천 원을 지급하는 선에서 개인보상을 마무리했다.
정부는 독립운동가와 수탈농민 등 다른 피해자와의 형평성 문제 및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부상자를 포함한 생존자를 보상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대신 정부는 청구권 자금이 우리 국민 전체에 대한 보상성격이라는 점을 내세워 자본재 및 원자재 도입과 농림수산, 종합제철공장 건설 등에 돈을 쏟아부었다.
1965년 5월 7일 열렸던 7차 회담 4차회의에서 이 공사는 "무상 3억 달러는 농업분야와 사회간접자본 등에 중점사용하고 유상 2억 달러는 공장설립, 철도, 해운 등에 집중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혀 일본으로부터 받은 보상금을 피해자 보상이 아닌 경제건설에 집중 투입할 계획이 이미 서 있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다음은 회담록 등 관련문서에 나타난 주요내용.
◇'제6차 한일회담 청구권 관계자료' 한국의 대일청구권 8개 항목에 관한 양측 입장 대조표 중 한국 제시 자료 ▲피징용자수 노무자 군인 군속 합계 생존자 648,081 282,000 930,082 사망자 12,603 65,000 77,603 부상자 7,000 18,000 25,000 계 667,684 365,000 1,032,684 ▲ 금액 생존자 1인당 200달러 계 1억8천600만 달러 사망자 1인당 1,650달러 계 1억2천800만 달러 부상자 1인당 2천 달러 계 5천만 달러 총계 3억6천400만 달러(연합)